그림세계

물과 빛 푸른색의 인상파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

#경린 2013. 5. 2. 00:30

 

구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 자화상 . 1892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카유보트는 인상파 미술을 사랑하고 19세기 파리를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화가로 프랑스의 미술사에선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도하다. 인상파 화가로서 물과 빛 푸른색 특히 내가 좋아하는 초록의 느낌이 좋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 이다.

 

카드놀이 . 1880

1848년 태어난 카유보트는 상류층 파리지앵의 가문으로 그의 아버지는 군수물자 사업을 하던 집안의 상속자이자 상업법원의 판사였다. 아버지의 많은 유산을 받아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그는 당시에 주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인상파 친구 화가들을 경제적으로 원조하거나 전시회를 주관하고 그들의 작품을 많이 사들여 인상파 작품의 수집가로서도 유명했다.

 

페인트공 . 1877

카유보트는 인상파 최초의 후원자로 인상파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 드문 사람이다. 마네, 모네, 드가, 르느와르, 세잔, 피사로.....기타 유명한 인상파화가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풍의 인상파 그림들이 그에 의해 남아있는 것이라 과장된 표현을 할 정도이기도 하다.

 

대패질 하는 사람들 . 1875

초기의 걸작인 '마루를 대패질하는 사람들'이 1875년 살롱전에서 '상스럽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자 인상파전에 출품 한다. 이 작품은 비교적 어두운 색조와 꼼꼼한 마무리 견고한 데생에서 전통 기법을 따랐기 때문에 일부 평론가들은 이 그림이 인상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했다.

 

마루바닥을 긁어내는 남자들 . 1876

'마룻바닥을 긁어내는 남자들'을 보면 카유보트의 비범성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철저하게 객관적인 관찰에 근거해서 체계적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라는 사실을 이 그림을 통해 알 수가 있다.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목재나 건축물의 질감을 잘 표현한 화가로 인정할 만하다.

 

뱃사공 . 1877

카유보트는 전통 기법을 배웠고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자신의 차이점을 분명히 나타내고 싶어했다. 대부분의 남성 화가들은 여성에 대한 이상을 통해 자신의 남성다움을 형성했지만 카유보트는 다른 남성들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 했다. 그의 작품들은 그의 남성 세계가 남성다운 세계이기를 그 자신이 바랐다는 것은 분명히 보여준다.

 

배젖기 . 1877

한껏 멋을 낸 신사가 상의를 벗어 놓고 느긋하게 노를 젓고 있는 모습 그는 배와 노젓는 사람들의 풍경을 참 많이 그렸고 정적인 표현 보다는 동적인 모습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통해 역시 남성다운 힘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카누 . 1878

<카누> 역시 역동적인 카유보트의 특징이 잘 묻어 난다.

 

발코니 . 1880

동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남성다운 힘을 표현하고자 하였는가하면 한편으로는 '고독한' 남자의 모습을 담아낸 그림들도 많았다.

 

발코니의 남자 . 1880

창밖을 바라보거나 어딘가를 응시하는 한 남자의 모습... 19세기 경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며 인구과밀로 인해 도시의 우울함과 인성의 파괴를 서서히 느껴가던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신선한 분위기와 자연스러운 순간의 포착, 그리고 도시화되어 가는 사회의 달라지는 모습을 자신의 감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그림이다.

 

창가의 남자 . 1875

창가에 서서 지나가는 한 여인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뒷모습 남성은 혼자일때 여성 보다 더 짙은 고독에 빠지는 걸까.... 캬유보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예술가로서 그의 고독함은 창 밖을 내다보는 한 남자의 모습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남자는 1876년 갑작스럽게 병에 걸려 사망한 화가의 남동생 르네 카유보트인데 그래서인지 화가자신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다.

 

유럽다리 위에서 . 1876

원래 그의 직업은 엔지니어였다. 공학도 답게 그는 배를 짓기도 하고 요트를 만들기도 했으며 거리의 풍경과 다리의 풍경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유럽다리 . 1879

마네의 '생 라자르역'을 보고 그린 '유럽다리'는 다리 난간의 철골 구조가 산업화의 힘찬 에너지를 전해주고, 저 멀리 난간 뒤로 생 라자르역에서 출발한 증기기관차의 흰김은 생동감으로 근대와 진보를 상징하는 파리를 잘 나타낸다. 오른쪽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은 노동자 복장이고 왼쪽에 정장을 차려 입고 실크모자를 쓴 귀족으로 부르조아의 지배를 전제하는 그림이기도 하여 그 때의 시대상을 담은 밝지만 다소 쓸쓸한 느낌이 드는 도시의 단편이다.

 

아르장퇴유의 세느강 . 1883

프랑스 인상주의 얘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르장퇴유 작품속 다리 저편으로 파리지엥들의 유원지 아르장퇴유가 보인다.

 

비 오는 날 파리 거리 . 1879



우리에게 친숙하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이 비오는 날 파리거리, (Paris Street on a Rainy Day)이다. 이 작품에서 카유보트는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면서도 인상파를 포기하지 않는 색감으로 파리 귀족들의 모습과 잘 정돈 된 신도시 파리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다.

 

낚시 . 1878

그는 파리지앵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데 동시대의 인상파 화가들의 사회적 모순이나 미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 또는 광학이나 인식에 대한 이론적 접근 없이 그의 작품은 차분하고 일상적이며 단편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 온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보는 이들의 마음도 함께 차분해지는 듯하다.

 

낮잠 . 1877

카유보트는 자신이 모르는 서민들의 생활이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간접경험도 중시하여 그들의 일상을 담은 그림들도 많이 그렸다. 미술을 감상하는 귀족관람객들은 인상파화가들이 표현 해내는 거리의 풍경이나 노동자들이 등장하는 그림이 이상하게 보였으며 노동자가 쉬는 날에 햇빛을 즐기러 나온다는 것이 의아할 뿐 도대체 이런 하찮은 것들을 예술로 표현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인상파를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마루를 대패질하는 사람들이 살롱에서 퇴자를 맞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강, 그리고 한 남자 . 1884

카유보트는 예르강 주변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 하다. 센강에서 갈라져 나온 예르강은 자신이 살던 마을의 강이기도 하다.

 

팔레트를 든 자화상 . 1880

구스타브 카유보트 <팔레트를 든 자화상> 그림의 배경을 보면 뒤에 걸린 그림이 르누아르의 '물랭 드 갈레트의 무도회'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었던 그림 중 하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르강 비 . 1875

그림을 보노라면 후드득 통통 빗방울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오르막길 . 1881

햇빛이 환히 비치고 있는 오르막 길을 다정히 오르고 있는 모습 풀밭으로 쏟아져 내린 햇살에 주위가 반짝반짝 빛나는 길을 걸었던 추억을 담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아르장퇴유의 못 . 1882

500점 정도의 작품을 남긴 카유보트의 작품은 후기로 올수록 보다 밝은 색과 굵은 붓터치로 바뀐다. 파리의 도시화가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그는 1894년 46세에 정원에서 일하다가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난다.

 

프티 젠비예 . 1893

프티 젠비예는 아르장퇴유 근처 세느강변 마을로 카유보트가 말년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그는 죽기 전에 그를 12년간 보필한 가정부에게 엄청난 유산과 그림을 주었다.

 

센강의 해바라기 . 1886

그의 유언에는 그가 소장한 작품을 나라에 조건부로 기증하기를 원하였는데 당시에는 인상파 화가의 그림은 루브르에 소장 된 적이 없기에 이를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고 일부만 소장을 허락하게 되었다 한다. 오늘날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인상파 화가들의 걸작품 대부분이 카유보트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 또는 개인 소장으로 들어갔는데 현시대에와서 보면 프랑스정부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위 '발코니의 남자' 경매가가 169억원이라니 말이다.

 

해바라기 . 1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