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사랑

#경린 2011. 8. 15. 00:36

 



미모와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21살에 출가해서 딸 하나를 낳고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던 정운 이영도는 해방되던 그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청마는 처자가 있는 기혼자요 정운은 미망인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는 정운이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청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그리움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 같이 까딱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령일기>중에서 그러기를 3년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에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되어 20년 청마는 1967년 2월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20년동안 편지를 계속 보냈고 이영도는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 것은 전쟁 때 불타 버리고 청마가 사망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주간한국>이 이들의 아프고도 애틋한 관계를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청마의 편지 5,000여통 중 200통을 추려 단행본으로 엮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숫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시집>중에서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현실의 사랑을 한단계 초월하여 받느니 보다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그의 사랑은 외로움이였다 아마 한계가 있는 사랑이기에 오히려 감동을 더욱 진하게 안겨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 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같이 요지경 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52년 6월2일 당신의 마(馬)

 

 

 



이영도, 그녀도 매몰차게 청마를 거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유치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둘 때까지 숱한 세월의 격랑 속에서 안타까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긴 세월 동안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무제 /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정운 이영도 청저집 중에서- 위 시 무제는 정운 이영도가 청마 유치환과의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작품으로 이영도는 사랑에 대해선 퍽 용감하고 솔직했다. 정운과 청마의 사랑은 청마가 정운에게 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책에 절절히 기록되어 있듯이 뜨겁고 열렬했던 그들의 사랑은 찬탄할 만하다. 이영도는 유치환을 잃은 마음을 시로 남겼다. 탑(塔)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애타는 심정을 시로 서로 화답하고 당신이 주신 시를 수 놓은 그 병풍 아래 누워야 잠이 들고, 하루에 한 장씩의 편지를 주고 받아야만 진정이 되는 두사람의 사랑은 참으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였다.




광복절을 맞아 3일간의 연휴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으니 뒹굴뒹굴 하다 집어 든 시집 청마 유치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을 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업어다 논 청마와 정운의 이야기들을 정리 해 보았다. 흔히 나의 이야기는 '로맨스'고, 남의 이야기는 '불륜'이라지만, 청마와 정운의 사랑은 불륜이라 이름하기엔 너무 아름답다.. 이루지 못할 사랑인 줄 알면서도 20년 간 지켜간 사랑이 그리 흔할까.... 아름답기에...아무나 할 수 없기에 그들의 사랑은 오늘날까지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