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마른 장작 / 김용택

#경린 2011. 10. 19. 09:51

 

photo by Jaha - 명성산의 단풍



마른 장작 / 김용택 비 올랑가 비 오고 나먼 단풍은 더 고울 턴디 산은 내 맘같이 바작바작 달아오를 턴디 큰일났네 내 맘 같아서는 시방 차라리 얼릉 잎 다 져 부렀으먼 꼭 좋것는디 그래야 네 맘도 내 맘도 진정될 턴디 시방 저 단풍 보고는 가만히는 못 있것는디 아, 이 맘이 시방 내 맘이 아니여! 시방 이 맘이 내 맘이 아니랑게! 거시기 뭐시냐 저 단풍나무 아래 나도 오만 가지 색으로 물들어갖고는 그리갖고는 그냥 뭐시냐 거시기 그리갖고는 그냥 확 타불고 싶당게 너를 생각하는 내 맘은 시방 짧은 가을빛에 바짝 마른 장작개비 같당게 나는 시방 바짝 마른 장작이여! 장작


 



봄날은 간다 / 김용택 진달래 염병헌다 시방,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것이 살을 다 내놓고 훤헌 대낮에 낮잠을 자다니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살골짜기 어지러워라 환장허것네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찔레꽃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을 잡아끌고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릿잎을 파랗게 쓰러뜨렸니라 둥근 달을 보았느니라 달빛 아래 그놈의 찔레꽃, 그 흰빛 때문이었니라 산나리 인자 부끄럴 것이 없니라 쓴내 단내 다 맛보았다. 그러나 때로 사내의 따뜻한 살내가 그리워 산나리꽃처럼 이렇게 새빨간 입술도 칠하고 손톱도 청소해서 붉은 매니큐어도 칠했니라 말 마라 그 세월 덧없다 서리 꽃도 잎도 다 졌니라 실가지 끝마다 하얗게 서리꽃은 피었다마는, 내 몸은 시방 시리고 춥다 겁나게 춥다 내 생에 봄날은 다 갔니라


 



무심헌 세월 / 김용택 세월이 참 징해야 은제 여름이 간지 가을이 온지 모르게 가고 와불제잉 금세 또 손발 땡땡 얼어불 시한이 와불것제 아이고 날이 가는 것이 무섭다 무서워 어머니가 단풍 든 고운 앞산 보고 허신 말씀이다


 



어머니 / 김용택 어머니는 새벽 강을 건너가 밭을 매셨다 호미 끝에 걸려 뽑히는 돌멩이들의 돌아눕는 아픈 숨소리가 잠든 내 등에서 다그락거렸다 젖은 돌멩이 몸에 파인 호밋자국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었다 아프고도 선명한 그 흰 다리를 건너 나는 세상으로 나갔다



어제저녁 침대협탁 위에 있는 책 중 집어 든 책 김용택님의 '그래서 당신' 시집에 있는 시 중 화자가 어머니가 되어 읊은 방언버젼의 시들이 자꾸자꾸 맴돌았다. 계절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날그날에 따라 맘으로 들어오는 시들이 다 다르다 어느날은 시가 뭐이리 맹숭해 했던 것이 똑 같은 시인데 가슴 절절히 파고 들때가 있다. 오늘의 햇살....따시하고 하늘은 높고 구름은 자유롭다 그 아래 산들은 바야흐로 알록달록 오만가지색으로 물들어가고...... "오메, 이런 날은 다 던져 뿔고 니캉 내캉 단풍놀이나 갇시모 조컷따..." 곱게 분 바르고 새빨갛게 입술도 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