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하나, 꽃 한송이 / 신경림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시인은 무엇에 홀린 듯 떠돌며 살아온 시간과
그 치기 어린 종횡무진의 공간을 돌아본다.
세월의 깊이가 시의 깊이로 전이되는 것은
마지막 두 행에서다.
하찮은 돌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
그 경계에, 인생이 있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고,
성스러움과 속됨 사이의 갈등이기도 할 것 이다.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는 사이에 세월은 간다.
시인의 해안이 녹아 있는 시다.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중에서
세월 따라 걸어온 길
많이 걸었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별 볼 것도 없다.
딴에는 아둥바둥 굽이굽이 끙끙 왔건만
어찌 뒤돌아 보이는 길은 이리도 짧고 밋밋한지....
어찌 살면 꽃으로 피어 날거나
남은 길 어찌 걸으면 가을국화 처럼
수수하면서도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 날거나......
잠들기 전 읽었던 시가
밤새 촉촉히 아스팔트로 내려 앉았다
회색빛 싸함으로 피어올라
전율하는 늦가을아침
오늘은 은행잎이 얼마나 떨어졌나....
데려가 줄 차를 기다리며
전신주에 기대 펑퍼짐 퍼져 앉아있는
쓰레기봉투...
피곤 해 보인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오는 버스를 보고
종종 걸음으로 뛰어 오는 사람들도,
쏜살 같이 지나가버리는 차들도
아무도 쳐다 봐 주지 않는데
은행잎 하나가 톡 떨어지며 빵긋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