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돌 하나, 꽃 한송이 / 신경림

#경린 2011. 11. 11. 09:38

 




돌 하나, 꽃 한송이 / 신경림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시인은 무엇에 홀린 듯 떠돌며 살아온 시간과 그 치기 어린 종횡무진의 공간을 돌아본다. 세월의 깊이가 시의 깊이로 전이되는 것은 마지막 두 행에서다. 하찮은 돌로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 그 경계에, 인생이 있다. 그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고, 성스러움과 속됨 사이의 갈등이기도 할 것 이다. 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는 사이에 세월은 간다. 시인의 해안이 녹아 있는 시다.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중에서

 




세월 따라 걸어온 길 많이 걸었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별 볼 것도 없다. 딴에는 아둥바둥 굽이굽이 끙끙 왔건만 어찌 뒤돌아 보이는 길은 이리도 짧고 밋밋한지.... 어찌 살면 꽃으로 피어 날거나 남은 길 어찌 걸으면 가을국화 처럼 수수하면서도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 날거나...... 잠들기 전 읽었던 시가 밤새 촉촉히 아스팔트로 내려 앉았다 회색빛 싸함으로 피어올라 전율하는 늦가을아침

 




오늘은 은행잎이 얼마나 떨어졌나.... 데려가 줄 차를 기다리며 전신주에 기대 펑퍼짐 퍼져 앉아있는 쓰레기봉투... 피곤 해 보인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오는 버스를 보고 종종 걸음으로 뛰어 오는 사람들도, 쏜살 같이 지나가버리는 차들도 아무도 쳐다 봐 주지 않는데 은행잎 하나가 톡 떨어지며 빵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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