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 박라연

#경린 2012. 3. 31. 20:42

 

명자나무(산당화)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 박라연 나, 이런 길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길을 손잡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네 먼지 한 톨 소음 한 점 없어 보이는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도 그도 정갈한 영혼을 지닐 것 같아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처럼 자동차의 탄력처럼

 

꽃사과



나, 아직도 갈 곳이 있고 가서 씨 뿌릴 여유가 있어 튀어오르거나 스며들 힘과 여운이 있어 이 길을 따라 쭈욱 가서 이 길의 첫 무늬가 보일락말락한 그렇게 아득한 끄트머리쯤의 집을 세내어 살고 싶네 아직은 낯이 설어 수십 번 손바닥을 오므리고 펴는 사이 수십 번 눈을 감았다가 뜨는 사이

 

모과



그 집의 뒤켠엔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꽃이 있네 절망이 사철 내내 내 몸을 적셔도 햇살을 아끼어 잎을 틔우고 뼈만 남은 내 마음에서 다시 살이 오르면 그 마음 둥글게 말아 둥그런 얼굴하나 빚겠네 건너편에 물론 강물이 흐르네, 강물 속 깊고 깊은 곳에 내 말 한마디 이 집에 세들어 사는 동안만이라도 나...처음...사랑할...때...처럼...그렇게... 내 말은 말이 되지 못하고 흘러가버리면 내가 내 몸을 폭풍처럼 흔들면서 내가 나를 가루처럼 흩어지게 하면서 나, 그 한마디 말이 되어보겠네

 

배꽃



따스한 햇살이 대지의 구석구석을 비추어 겨울의 스산함을 거둬 들이니 꽃님들이 망실망실 피어나고 봄이 왔다. 익숙하면서도 아직은 겸연쩍은 이 봄 너에게 새들어 사는 동안만이라도 처음 따뜻했던 그 맘 그대로 그렇게....

 

진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