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허수경
사카린같이 스며들던 상처야
박분(薄粉)의 햇살아
연분홍 졸음 같은 낮술 마음졸이던 소풍아
안타까움보다 더 광폭한 세월아
순교의 순정아
나 이제 시시껄렁으로 살아가려 하네
시시껄렁이 나를 먹여 살릴 때까지
봄날은 간다 / 이외수
부끄러워라
내가 쓰는 글들은
아직 썩어가는 세상의
방부제가 되지 못하고
내가 흘린 눈물은
아직 고통 받는 이들의
진통제가 되지 못하네
돌아보면 오십 평생
파지만 가득하고
아뿔사
또 한 해
어느 새 유채꽃 한 바지게 짊어지고
저기 언덕 넘어로 사라지는 봄날이여
꽃은 필 때 아름답지만 지고나면 허무와 공허
그 빈 곳을 초록이 채워 나가고 있다.
들녘을 다양한 점묘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초록이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햇살의 농도에 따라
잎을 떨며 잔잔하면서도 싱그러운 녹색 전시회를 보여주고
그 생동감은 화려한 꽃보다 덜 하지 않다.
연한 연두에서 눈부신 신록으로,
짙어지고 짙어져 진초록 녹음으로...
녹색 하나 만으로도 변화무쌍한 조화를 부리는 자연
뜨거워지는 햇살의 강도를 오로시 받아내며 보여주는
미묘한 색감의 차이는 우리의 눈과 발걸음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