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상처 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 하는 대목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산줄기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꽃 한 송이도 상처를 딛고 피고, 상처 속에 핀 꽃들로 하여
봄이 오는 지리산을 생각했습니다.
설해를 입은 우리 집 마당가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솔방울을 매달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람도 쇠약해질 때 사랑의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하는데
무릇 생명을 가진 것들의 생존 본능이
그렇게 몸에 작용을 하는 거겠지요.
그러나 이 매화꽃에는 본능을 넘어서는 깊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저는 답장을 쓰며 후배에게 편지를 옮겨
한 편의 시로 만들고 싶은데 허락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상처 입은 나무에서 첫매화 피는 걸 바라보며 보낸
편지 한 구절 한 구절이 저에게는 시처럼 다가왔습니다.
도종환 산방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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