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에게 부침 / 권대웅
언제나 지쳐서 돌아오면 가을이었다.
세상은 여름 내내 나를 물에 빠뜨리다가
그냥 아무 정거장에나 툭 던져 놓고
저 혼자 훌쩍 떠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나를 보고 빨갛게 웃던 맨드라미
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단지 붉은 잇몸 미소만으로도 다 안다는
그 침묵의 그늘 아래
며칠쯤 푹 잠들고 싶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며 일어서는 길에
빈혈이 일어날 만큼 파란 하늘은 너무 멀리 있고
세월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 변방의 길 휘어진 저쪽 물끄러미 바라보면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문을 여는 텅 빈 방처럼
후두둑 묻어나는 낯설고도 익숙한 고독에
울컥 눈물나는 가을.
땀흘리며 하루종일 밖에서 뒹굴다 돌아온
때꼬장물 개구장이 유년의 기억을 담은 듯한 꽃
맨드라미.......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도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피어나
가을의 바람에 씨앗 터는 꽃
맨드라미.......
예전에는 길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 도시에서는 보기가 쉽지않다.
간혹 가로수 길가 동그란 큰화분에 관상용으로
키워지는 예쁘고 색고운 맨드라미를 간간히 보기는 하지만....
어렸을적의 그 투박하고 촌스런듯한 모양새는 아니라도
도심에서 만나게 되는 맨드라미는
참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