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다 칠해져 온 곳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때,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