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花 / 임보
지난 이른봄 동대문 근처에서 어정거리다
한 시골 아낙이 매화 몇 그루 안고 졸고 있기에
제법 밑둥 굵은 놈 하나 골라 데려와
아내 눈치보며 안방 머리맡에 앉혀 놓고 지켰는데
그 놈이 마른 가지 끝에 봄을 몰아 눈을 틔우는데
처음엔 분홍 좁쌀알로 며칠 밤 몸부림을 치다가
그 꽃눈이 토함산 해돋이짓을 하며 점점 터져나오는데
그 포르스름한 백옥 다섯 잎이 다 피었을 때는
한 마리 나비로 검은 등걸에 앉아 있는 셈인데,
그런 나비가 꼭 다섯 마리 앞 뒤 가지에 열렸다 지면서
방안에 사향분 냄새를 쏟아 놓고 갔는데
이것이 무슨 시늉인가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더니
옳거니, 내 아내가 내게 시집오기 전에 지녔던
그 갸름한 눈썹허며, 그 도톰한 흰 종아리허며,
명주실 같은 목소리 허며
이런 것들이 제법 간드러지게 나를 불렀는데
촌수로 따지자면 이놈의 그 나비 시늉도 내 아내가 뿜어대던
그 부름인가?
아니면 내 아내가 미리 이 꽃시늉을 훔쳐 그리했던 것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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