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마중물 / 윤성학

#경린 2011. 7. 4. 00:20

 




마중물 / 윤성학 참 어이없기도 해라 마중물, 마중물이라니요 마중물 : 펌프로 물을 퍼올릴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먼저 윗구멍에 붓는 물 (문학박사 이기문 감수 '새국어사전' 제4판, 두산동아) 물 한 바가지 부어서 열 길 물속 한 길 당신 속까지 마중갔다가 함께 뒤섞이는 거래요 올라온 물과 섞이면 마중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텐데 그 한 바가지의 안타까움까지 이름을 붙여주어야 했나요 철렁하기도 해라 참 어이없게도

 




시골을 낯설고 불편한 곳으로 여기는 십대들에게 '마중물'은 외국어에 가까울 것이다. 펌프도 사어(死語) 축에 끼리라. 우물과 상수도 사이에 '뽐뿌'가 있었다. '뽐뿌질'이 있었다. 그런데 사라진 말이 어디 한둘이랴. 창경(窓鏡)이라고 아시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윈도'를 여닫으면서도 창경은 처음일 터. 어른들께 여쭤보시라. 오래되지 않은 옛날이야기가 한 보따리는 나올 것이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이문열 엮음) 중에서

 




어렸을 적 옆집 우물가에 뽐뿌가 있었다. 물한바가지를 붓고 물을 끓어 올리는 그 일이 신기했지만 나의 뽐뿌질에는 물이 쉬이 따라 올라오지를 않았다. 울오빠의 뽐뿌질에는 열길 물속의 물이 잘도 따라 와 콸콸 쏟아졌었는데...... 마중물.... 나는 이 단어를 오늘 처음 알았다. 열길 물 속의 물을 맞아 손잡고 올라오는 물 이 얼마나 정겨운 우리말인가.... 마중물.... 내가 먼저 마중물을 붓고 정성을 들여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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