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흐린날 바다에 나가보면 / 이외수

#경린 2009. 8. 8. 10:23

 

 

       
      흐린날 바다에 나가보면 / 이외수
      흐린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 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 방울
      그때의 순수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않았는데
      죽은 시간이 해체되고 있다 
      더 깊은 눈물속으로
      더 깊은 눈물속으로
      그대의 모습 해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