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도의 나그네 / 이기철

#경린 2010. 3. 21. 19:03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애인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만난 것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 글쓴이: 이기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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