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앉아서마늘까'면 눈물이 나요 / 이진명

#경린 2011. 7. 9. 11:02

 

 


'앉아서마늘까'면 눈물이 나요 / 이진명 처음 왔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디언식 이름을 갖는대요 돌아가며 자기를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인디언이다! 새 이름짓기! 재미있고 진진했어요 황금노을 초록별하늘 새벽별 하늘누리 백합미소 한빛자리 (어째 이름들이 한쪽으로 쏠렷지요? 하늘을 되게도 끌어들인 게 뭔지 신비한 냄새를 피우고 싶어하지요?) 순서가 돌아오자 할 수 없다 처음에 떠오른 그 이름으로 그냥 '앉아서마늘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완전 부엌 냄새 집구석 냄새에 김빠지지 않을까 미안스러웠어요 하긴 속계산이 없었던 건 아니었죠 암만 하늘할애비라도 마늘 짓쪄 넣은 밥반찬에 밥 뜨는 일 그쳤다면 이 세상 사람 아니지 뭐 이 지구별에 권리 없지 뭐 근데 그들이 엄지를 세우고 와 박수를 치는 거예요 완전 한국식이 세계적인 건 아니고 인디언적인 건 되나 봐요 이즈음의 나는 부엌을 맴돌며 몹시 슬프게 지내는 참이었지요 뭐 이즈음뿐이던가요 오래된 일이죠 새 여자 인디언 '앉아서마늘까'였을까요 마룻바닥에 무거운 엉덩이 눌러 붙인 어떤 실루엣이 허공에 둥 떠오릅니다 실루엣의 꼬부린 두 손 쯤에서 배어나오는 마늘 냄새가 허공을 채웁니다 냄새 매워 오니 눈물이 돌고 줄 흐르고 인디언 멸망사를 기록한 책에 보면 예절 바르고 훌륭했다는 전사들 검은고라니 갈까마귀 붉은구름 붉은늑대 선곰 차는곰 앉은소 짤막소...... 그리고 그들 중 누구의 아내였더라 그 아내의 이름 까치...... 하늘을 뛰어다니다 숲숙을 날아다니다 대지의 슬픈 운명 속으로 사라진 불타던 별들 총알이 날아오고 대포가 터져도 '앉아서마늘까'는 불타는 대지에 앉아 고요히 마늘을 깝니다 눈을 맑히는 물 눈물이 두 줄 신성한 머리 조상의 먼 검은 산으로부터 흘러옵니다

 

 


인디언의 이름 짓기는 독특했다. 성장기에 두드러지는 성격이나 특징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 평생 대여섯 개의 이름을 갖기도 한다. 우리 이름 석 자 가운데 내 것은 한 자 밖에 없다. 성씨는 아버지에게서 왔고, 돌림자는 형제들과 같이 쓴다. 인터넷이 일상화하면서 아이디를 몇 개씩 갖고 있는데, 아이디에서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인디언식으로 이름을 지어보자 (짖궂은 별명은 말고). 내 이름부터 새로 지어보자. 가족과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도 지어주자. 새로 지은 이름이 바로 꿈이다. 그 꿈을 잊지 않고 자주 부르면, 자주 불러주면, 꿈의 주인공이 된다. 이문재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 중에서

 

 


인디언식 이름짓기 나도 함 지어볼까...... 근데 막상 이거다하고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나 다운 이름 나 답고 싶은 이름 어렸을 적 아부지께서는 '씽티'라고 하셨다. 잘먹고 잘잔다 해서 그렇게 부르셨다 한다. '곰'이라고 하신 적도 있다. 마른편이었으므로 외모에서 붙여진 것은 아닌 듯하고 다른형제간 들에 비해 털털했던 편 이래도 저래도 그냥 묵묵...시키는대로 하는...^^ 그래서 학창시절에도 지금도 울옴마는 내가 간다고 하면 편하시단다.. 음식투정 안했던아이라 도시락반찬 아무거나 싸 주어도 괜찮았던.... 지금도 그냥 편하게 상차릴수 있어, 또 뭐든 잘먹고 맛있다 해서....ㅎ 가만 들여다보니... 참으로 개성없는 밋밋함 내지는 둥글둥글 감자같다.ㅋ 고등학교 진학 연합고사를 치고 나오는데 그 많은 학부모님들 속에서 '개모야'하고 부르는 소리..귀가 번쩍.... 세상에나....울오빠....ㅋㅋ 오빠는 나를 '개모'라고 불렀다. 못생긴 모개(모과)를 닮아서...ㅎㅎ 모개를 거꾸로 '개모'라고 불렀다. 그런데 언젠가는 그러더라...자라면서 꽤 괜찮은 모개가 되었다고...ㅎㅎㅎ 어찌보면 듣기 싫어 했을 법도 한데 싫어했던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역시 난 곰인가보다..ㅎ 생각해보건데...그 부름 속에는 사랑이 가득 들어 있었던 것 같다. 형제 넷인데...이렇게 다양하게 불려진 아이는 나 하나뿐이었던....으쓱...ㅋㅋ 그리고 그 다음 별다르게 불리었던 기억이 없다. 음... 아들애가 스물하나이니 '누구엄마'라고 불린 세월도 만만치 않네...앞으로 죽 더 이어지겠지만.. 좀 더 지나면 누구할머니라고 불려지겠네... 하이고..무시라..ㅋ 사회생활하면서....아이들이 붙여준 이름 김쌤....떴다김쌤...영어이름 nancy...... 생년월일을 넣고 사이버친구가 지어 준 이름 경린.... 진흙탕속에서도 제 빛깔 잃지 않고 피어나는 연꽃처럼 세파에 물들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빛날炅 옥빛璘......... 인디언식 이름... 가장 나 다운 이름... 나 답고 싶은 이름... 어떤 것이 있을까... 자주 불러주면 꿈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데... 비 오는 주말.... 한 권의 책에서 생각거리를 얻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OST - 인생의 회전목마 (히사이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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