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수 / 이형기
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같이 무성하던 청춘이
어느덧 잎 지는 이 호숫가에서
호수처럼 눈을 뜨고 밤을 새운다
이제 사랑은 나를 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우러르는
눈이 있을 뿐이다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같이 떨던 것이
이렇게 고요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적막강산> 모음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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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잎이 지는 호숫가에서 밤을 새운다.
밤을 새우며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다리면서도 나는 사랑 때문에 울지 않는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너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은 불고 가는
바람에도 떨리는 여린 호수와 같았다.
그러나 나무와 같이 무성한
청춘의 날들이 지나 잎이 지는 나이까지 오는 동안
내 마음은 이제 잠잠해졌다.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너를 기다린다.
기다림이란 이렇게 차고 슬프면서도
담담한 호수 같은 걸
마음속에 지닐 줄 아는 것이다.
도종환엮음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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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
큰아이를 키울 때는
종종걸음에 안달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작은애는 좀 느긋해 진 듯
잔잔한 물결로 기다리게 된다.
맘 속에 담담함을 지니고 바라볼 수 있게
대견스러워진 딸아이에게
고마움을 보내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