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앞산 남산에는 왕릉, 산성터, 절터, 불상, 탑, 석등, 연화대 등 수백점의 불교문화재가 있어 산 그 자체가 절이고 천년간 이어져 온 고미술관이라고 불립니다. 그 곳 남산의 서쪽편 기슭아래에 일성왕릉, 지마왕릉, 배리삼릉, 경애왕릉을 포함한 6곳 박씨 성을 가진 왕릉이 있습니다. 이 곳은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 통일신라가 멸망할 무렵 박씨로서 왕위에 오른 신덕왕, 경명왕, 경애왕의 능은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를 계승했다는 의미로 이곳에 왕릉을 조성한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하고 있으며 이곳 능의 주인들도 추정에 의한 것이라 합니다.
경주 삼릉소나무숲은 왕릉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삼릉 주위로 15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하게 둘려 있고 안개 낀 소나무 숲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아 소나무숲 출사명소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배병우님의 소나무작품이 유럽 사진경매에서 비싼 값으로도 유명하고 역사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삼릉 가기 전 삼릉계곡의 입구 소나무숲 안에 있는 경애왕릉을 먼저 찾았습니다. 경애왕은 신라마지막왕 경순왕 바로앞의 왕이며 경주에 있는 신라왕의 마지막 능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왕 경순왕의 능은 경기도북부쪽에 있다합니다.
삼국사기 경애왕편에 보면 견훤은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겨울 11월에 갑자기 왕경을 공격해 들어갔다. 왕은 비빈, 종실 친척들과 포석정에서 잔치를 열고 노느라 적병이 이르렀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한 채, 왕과 비는 후궁으로 도망쳐 들어가고 종실 친척과 공경대부와 부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숨었다. 적의 포로가 된 자들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며 땅을 기면서 노복이 되기를 구걸했으나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견훤은 또 그의 병사들을 이끌고, 재빨리 공사의 재물을 모두 빼앗고, 궁궐로 들어가 좌우에 명하여 왕을 찾도록 하였다. 왕은 비와 첩 몇 명과 후궁에 있다가 군대 진영으로 잡혀갔는데, 견훤이 핍박하여 왕을 자살하도록 하고 왕비를 강간하였으며 부하들이 비와 첩을 간음토록 내버려 두었다. - 옮겨온 글 겨울 11월이면 엄동설한으로 양력12월~1월로 볼 수 있으며 포석정은 제를 지내는 곳으로 연회를 열었다기 보다는 포석사 사당에서 제를 지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합니다. 어쨌거나 국운이 쇠한 나라 왕의 마지막 가는 길이 참으로 비통하고 처참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국세가 재기할 수 없을 만큼 기울었음을 나타낸 것인지 왕릉의 크기도 빈약한 편입니다.
삼국사기 경순왕편(즉위 원년)에는 전왕의 시신을 옮겨 서당에 안치하고, 여러 신하들과 통곡하였다. 시호를 올려 경애라 하고 남산 해목령에 장사 지냈다. 태조가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제사하였다. 해목령은 남산신성내 남쪽 서측의 봉우리를 말하며, 그 아래 게의 눈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부여된 명칭으로 높이는 265m이다. 그러나 해목령 주변에서 왕릉급의 고분이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의 능은 조선 영조 6년 박씨 일족에 의해서 비정된 것이다. 그리고 박씨일족이 이처럼 사람과 인접한 곳에 비정한 이유는 경애왕이 신덕왕의 아들이자 경명왕의 아우이기 때문이다.(이근직) -옮겨온 글 전성기 왕릉의 화려한 모습과는 동떨어진 석물을 비롯한 특별한 장식이 없이 작은 봉문만 있는데 주변에 송림이 울창하고 봉토가 일반묘보다는 크므로 왕릉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합니다.
삼릉계곡 주위로 봄이면 노오란 개나리가 피어 경애왕릉 옆을 지켜주고 분홍빛 진달래도 무리지어 피어 빛으로 주위를 감싸고 있어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루기도 합니다. 왠지 짠한 맘이 드는 경애왕릉.......주위에 호위하듯 촘촘하게 소나무가 둘러 싸여 지켜주고 있는 듯해서 다행입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적한 길을 따라, 소나무로 울창한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경애왕릉에서 삼릉까지는 솔숲을 따라 걸으면 5분도 아니 걸리는 거리인 듯합니다. 참으로 기분 좋은 길입니다. 맑은 공기 마시며 소나무가 만들어주는 자연 그늘을 따라 자박자박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걷기만 하면 되는 길입니다.
울창한 소나무숲에는 딱이 정해진 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걸으가면 됩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삼릉숲과 남산 주위의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주아주 좋을 듯합니다.
경주 배동 남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배리삼릉은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서쪽에서부터 신라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아달라왕과 경명왕 사이에는 700여년의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외형의 봉분을 하고 있어 그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운데 신덕왕릉으로 추정하는 능은 두 차례에 걸친 도굴을 계기로 내부가 조사되었는데 벽의 일부에 연속해 마치 병풍을 둘려 세운것처럼 채색된 벽화가 있다고합니다. 다른 문양이나 그림은 없고 5색으로 구별 해 순서없이 배색하여 단순한 채색면에 지나지 않지만 자금까지 확인 된 유일한 신라시대고분 채색벽화라 주목되는 자료라고 합니다.
동트기 전 안개가 자욱할 즈음의 신비로움으로 가득 싸인 솔숲 적송의 붉은 기운 위로 초록솔잎의 어우러짐과 빛이 만들어주는 오묘한 조화 삼릉소나무숲이 하도 유명하여 꼭 한 번은 와 보고 싶었던 곳인데 와 보니 공감백배 역시 감탄스러웠습니다. 규모도 대단하고 노송들도 잘 가꾸어져 건강해 보였으며 관리가 잘 된곳으로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은 곳임을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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