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사랑으로 나는 / 김정란

#경린 2010. 2. 13. 15:13
 
      사랑으로 나는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았던 매미날개와 매미날개에 머무는 햇살과 그 햇살의 예민한 망설임들을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오로라와 그 오로라가 우주 먼 곳 태어나지 않은 역사와 맺는 관계를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언젠가 그 칼들이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사랑으로 나는 죽어가는 세계의 모든 생명들과 이제 막 태어나는 어린 생명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 될 것이라고 믿는다, 될 것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이며 너이며 그들이다. 사랑으로 나는 중심이며 주변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는 나의 상처의 노예이며 주인이다. 사랑으로 나는 나의 상처를 세계의 상처 위에 겸손하게 포개놓는다. 세계, 나의 아들이며 나의 지아비인 세계의 상처 위에 나처럼 아프고 불행한 세계의 상처 위에, 가만히, 다만 가만히. - 김정란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듣기가 싫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익고 있는 붉은 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옥상 정원에서 까맣게 여물고 있는 분꽃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한계령 천길 낭떠러지 아래 서서 머나먼 하늘까지 불지르고 있는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가을은 남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앉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 또다시 사랑의 빅뱅으로 돌아가고만 싶다 - 김승희 죽도록 사랑한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불합리한 말일 것이다.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데 왜 하필이면 죽는다는 것이냐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시선 안에 머무는 붉은 감이 되고, 푸른 날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분꽃이 되고 싶은 마음, 산산첩첩을 꽃불처럼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사랑의 본령일 것이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 햇살 아래에서 창세기를 써내려가듯 사랑의 밀서를 쓰고 싶은 마음, 그런 것이 사랑일 것이다...양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