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글

비 오는 날에 / 나희덕

#경린 2010. 5. 23. 11:41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젖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