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기형도

#경린 2011. 3. 18. 08:31


바람은 그대 쪽으로 / 기형도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靈魂(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窓門(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短篇(단편)의 잠속에서 끼여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沈默(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한다. 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수 없는 生의 僻地(벽지)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대, 저 고단한 燈皮(등피)를 다 닦아내는 薄明(박명)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




밤의 슬픔이 내려앉은 촉촉한 아침 그리움을 정제시킨 깨끗한 슬픔으로 가슴팍을 조여오는 근육의 울음 컥컥 소리를 참아내는 목줄의 떨림 아무런 매개 없이 괜시리 눈물이 난다. 아니 시 속의 그리움이 내게로 와 눈물이 된다. 어쩌면..... 눈물 흘릴 구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沈默)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고개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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