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꿈꾸는 정원 / 이소라
바람의 눈 / 이어령
창문으로 바람만이 드나드는 게 아니다.
창문에는 바깥 풍경과 방안 풍경이 동시에 왕래한다.
창문은 바람의 눈
언덕 위의 깃발이 나부끼고
산 위의 구름이 흐르는 것이 보일 때처럼
흔들의자에 앉아 수놓는 당신의 모습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볼 수 있다.
창문은 바람의 눈
창문에 불이 켜지면
벽시계가 걸려 있는
방안이 보인다.
일어섰다 앉는 당신들의 몸짓과 웃음
생선 굽는 내도 배어나온다.
집에 창이 있다는 것은
몸에 영혼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창이 없었더라면 나는 밖에서
당신은 안에서
영원히 떨어져 있는 섬.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무리 창문을 굳게 닫아도
바람의 눈으로 당신을 본다.
* 영어의 window 창이라는 말은
window eye 바람의 눈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산문의 언어는 딱정벌레의 등처럼 딱딱합니다.
그것으로 연약하고 부드러운 시의 육질을 보호해 줍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산문의 껍질 속에 숨어 있던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늘 생명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급소를
훤히 보여 줍니다.
시의 언어는 누가 찌르지 않아도,
상처 없어도 피를 흘립니다.
시를 썼습니다.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리고 보여서는 안 될
달의 이면 같은 자신의 일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딱정벌레의 껍질 뒤에 숨어 있는
말랑말랑한 내 알몸을 드러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를 쓰고 나서는 늘 후회합니다.
빅뱅이 일어난 뒤 타다 남은 재처럼
물질에 매달려서 후회를 합니다.
시는 후회를 낳고 후회는 시를 낳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 첫시집은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기쁜 빛의 축제처럼 즐겁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나는 아직도 산문의 갑옷으로 무장하여
내 생명의 속살을 지켜갈 수밖에 없는 한 마리
딱정벌레 아니면 중세 때의 한 갑추병입니다.
2008년 8월8일 이어령 첫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머리말 중에서
|
창이 없었더라면
그대와 나는
영원히 떨어져 있는 섬
창이 없었더라면....
어쩔뻔 했을까나요....ㅎ
오늘밤
창으로 어둠이 스며 들어오고
당신은 별이 되어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귀뚜라미 노래소리를
들려주며 반짝반짝
창가에서 커텐과 왈츠를 추는
맘 급한 가을바람을 따라
휘파람도 불러 주십니다
포근하고 편안한 밤이 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