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연가 / 경린
촉촉히 내리는 비의 설레임 안고
세상을 여는 귀울림으로 온 그대가
거짓말처럼 온 가슴 물들이고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열어
저 너머 담장 밖 세상의 바람에
눈멀고 귀멀게 했던 그리움
어찌할 줄 몰라 온 여름을 하루같이
위로위로 끝도 없이 뻗어가지만
부르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는 그 고통
장맛비 속에 피어나
지치도록 활활 타 오르다
서럽도록 그리운 가슴안고 지는 날
그대 이름 한번 불러 볼 수 있으려나
|
한참을 신나게 내리던 장맛비 마실 간 사이
때는 요때다하고 잠깐 마실 나갔다
습기 속으로 부는 바람이 시원함을 안겨주는 오후
비 맞아 선명해진 거리의 풍경들이
상큼하다는 느낌.....
집집 땅바닥쪽 담벼락이나
화분 궁뎅이마다 튀어오른 물방울의 장난이
장맛비의 신난 향연을 말 해 주는 듯 했다.
무더위를 날려 준 장맛비 덕분에
팔랑팔랑 여름속을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이집 저집 한창 꽃 피우는 화초들도 신이 난 듯 했다.
어느 집 담장의 능소화도
담장 밖으로 세상구경 나와
오는 이 가는 이 맘을 설레게 웃고 있었다.
싱그러운 초록 속 물기 머금은 다홍의 발랄함에
눈 빼앗기고 다가가자니
발등 위로 툭 떨어지는 꽃 한송이
아직도 생생한 발랄함이 있는 모습 그대로다
초라해지기 전에 지는 꽃이라고 하더만...
그 자존심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꽤 멀리 온 것 같다는 생각에 하늘 올려다보니
마실 나갔던 장맛비 먹구름을 몰고 오는 폼새가
또 한 바탕 퍼 부을 듯 하다.
돌아가야겠다고 휙 돌아선 쪽 저 멀리 산허리에는
하얀구름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