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그래도 통닭향이 코 끝을 스쳤다.

#경린 2010. 8. 29. 15:06




“엄마, 할아버지” 전화기를 건네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시큰둥 “할아버지 화 나셨나봐 ” 집에 와서는 핸폰의 진동을 풀어 놓는다는 것이 맨날 깜박깜박한다. 아부지 전화를 감지 못하고 딸이 받지 않으니 손녀 핸폰으로 하시고는 짜증을 내시나보다 했다. 전화기 바꿔 받자마자 기차화통 삶아 먹은 소리를 치신다. 울아부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 표현은 항상 이렇게 과격하시다. 이러면 이래서 저러면 저래서 그 어느 것 하나 당신이 직접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인색하시고 만족하시는 경우가 없다. 인천 동생과 통화하고 좀 안 좋으셨나보다 약주 한 잔 하시고 그 화풀이를 나한테 하신다. 아마도 지금 나한테 하는 것처럼 하셨겠지 동생은 뭐라고 말대답을 했을 것이고.....이긍... 묵묵부답 아무 대답 없이 듣기만 했다. 이건 이래요. 저건 저래요. 내 생각을 얘기 했다가는 세상 더 시끄러워 지니 이럴 때 내 최상의 무기는 그냥 듣고만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익숙해져 아이들도 나도 이골이 난 일인데 어느새 눈물이 소리없이 또르륵...... 그렇게 속에 있는 울분을 토하시면 아부지는 화가 좀 풀리시려나........




눈치 빠른 우리 딸 “ 엄마, 배고프지?? 우리 닭 시켜 묵자, 나도 배고파...” 닭.... 전혀 닭이 먹고 싶지 않았다. 삼키면 목에 다 걸려 버릴 것 같았다. “다른거 먹자...엄마는 우동 먹고 싶어..이거” 하루야 돈까스집의 가쯔면을 짚으니 딸애는 닭먹고 싶은데를 중얼거리면서도 소세지 함박스테이크를 먹겠단다. 닭먹고 싶다는 그 말이 계속 웽웽해서 “그래 닭시켜. 뭐시킬건데??” 딸애는 이때다 싶었는지 며칠 전 현관문에 붙어 있던 네네치킨 전단을 들고 들어와 한참을 고민하더니 후라이드와 양념이 반반 섞인 반반치킨을 시켰다. 닭이 오는 동안 유재석 선전하는 네네치킨이 맛있다고 가쯔면 우동을 양보 한 날 위로 한답시고 딸애가 연신 쫑알거렸다. 포장부터가 남달랐다. 직육면체 티슈 모양의 여느 치킨집의 포장이 아니라 언듯 보기에는 피자 포장 인줄 알았다. 납작한 직육면체 모양 포장을 열어보니 250ml 콜라 한 병이 누워 있고 머스타드소스, 깍두기물김치, 옷수수야채셀러드 그기다가 핑크색 딸기 아이스크림까지 작은 사각 투명용기에 깔끔하게 담겨 있었다. 보기 좋은 것이 먹기 좋다고 했던가 맛도 요근래 먹어 본 치킨들 보다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념보다는 후라이드가 내 입맛에 맞았다. 양념은 쪼금......더 매콤 했으면 하는 생각 남다른 깔끔한 포장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서비스포인트에 소비자의 입맛을 잡은 맛까지 히트를 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통 삶은 목소리에 기가 질려서 그런지 입이 깔깔해 몇 조각 먹지 못하고 물러나 앉아 열심히 치킨 삼매경에 빠진 딸애를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때 울 아부지께서 재래시장에서 튀겨 오셨던 통닭 생각이 났다. 그 때는 재래시장 닭집에서 닭을 튀겨 팔았었다. 즉석에서 손님이 고른 닭의 목을 따고 뜨거운 물에 담가 털을 쏙쏙 뽑아 잘 튀겨지게 칼집을 넣어 시크멓고 오목하게 큰 무쇠 솥에다 튀겨 주었다. 닭똥집도 함께.... 지금 생각 해 보면 그 때 닭은 지금 닭의 두 배 크기는 된 듯하다. 아마도 요즘 촌닭이라고 하는 닭 정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빠가 기분좋게 약주 한 잔을 걸치시고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시며 누런 통닭봉투를 들고 오셨었다. 아빠가 통닭향을 날리며 오시는 날은 정말 신이 났었다 다리 한 쪽은 아버지 몫, 나머지 한 쪽은 할머니 몫 그러고보니 울 옴마는 그닥 자시지 않으신 것 같고 아마도 오글오글 4형제의 몫을 더 주려 그러하셨을 것이다. 지금도 그 고소한 향이, 맛이 그리워 가끔은 아무 양념하지 않은 생닭을 튀겨 달라고 해서 먹을 때가 있다.




작은 딸, 큰 딸 번갈아 가며 울화통을 터뜨리시고 울아부지는 지금 주무시려나? 아니면 울옴마가 또 곤혹을 치려고 계시려나? 오빠는 좋것다 미국 있으니 이런 울화통 소리 안 들어도 되고... 하긴 한국 있어도 울 아부지 엔간해서는 오빠한테는 안 그러시지 오빠 화통이 더 크니.....^^ 그래도 요즘은 새벽에 그러지 않으시니 그나마도 얼마나 다행인가 아버지 술버릇이 고약하셔서 아니 워낙 자식에 대한 기대도 욕심도 많으셔서 그러실 것이다. 울형제간 들 새벽 술 취한 아버지의 첫 전화가 오면 바로 전화 코드를 빼 버렸던 적,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때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물가물 눈이 감기다가도 가슴을 찌르는 아부지의 비수에 눈물을 펑펑 쏟는 것이 의례코스였으나 차마 전화코드를 뽑을 수가 없어 다섯 통 아니 열통까지 연이어 울어대는 전화를 다 받았었다. 지은 죄가 많은 큰딸이라 해 드릴 수 있는게 그거 밖에 없었다. 엉엉 울면서도 그렇게 밖에...... 들어보면...아니 조금만 방향을 틀어 생각하면 아무것도, 별것도 아닌일이 될 수 있는 일을 그렇게라도 속풀이를 해야하시는 울아부지의 유별난 성격이 넘 애달프면서도 오늘 또 내 가슴을 후벼판다. 그 와중에도 초등학교 때 먹었던, 아부지가 사 오셨던 통닭향이 코끝을 스쳤다. 10년 8월의 끝자락 울 아부지 뿔 나셨다 / 경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