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세계

폴 시냑 - 점으로 그려진 세상

#경린 2011. 1. 14. 14:24

 



폴 시냑 - 점으로 그려진 세상

View of the Port of Marseilles 1905



폴 시냑(Paul Signac, 1863-1935)은 신인상주의 화가이자 이론가이다. 팔레트에서 섞지 않은 물감의 색점을 캔버스 위에 찍어, 병치된 색채가 관람자의 눈에서 혼합되게 함으로써 순수하고 밝은 화면을 만들고자 했던 점묘법 혹은 분할주의 기법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신인상주의는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에 의해 개발되었으나,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갑자기 사망했다. 이후 신인상주의를 이론화하고 실천하여 후대에 이를 알리고, 이 새로운 회화 언어를 수많은 화가들이 시험하게 한 사람은 폴 시냑이었다.



La maison verte, Venice 1905; Oil on canvas, 46 x 55.2 cm


빨간 부표, 생 트로페



향해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폴 시냑은 1892년 생 트로페 근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항구의 풍경에 매료되었다. 항구 주변의 높은 집들과 색색의 작은 범선들은 이 때부터 그에게 주된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특히 시냑의 이 작품이 발표된 이래로, 생트로페는 화가들에게 사랑을 받는 지역으로써 풍경에 대한 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이 작품은 1892년 이후 변화된 시냐크의 회화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에 그는 분할주의(Divisionism)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나치게 억압적인 신인상주의와는 거리를 두었다. 오히려 꼼꼼한 작은 점들을 사용하기보다는, 좀 더 큰 터치를 구사하여 작품 전반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으며, 나아가 표현성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 이전에 그린 수채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시냐크는 여전히 색채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면에 떠 있는 빨간 부표의 물 위에 묘사된 그림자는 여러 개의 터치로 나누어져 있다. 이 그림자에서는 특히 청색과 주황색이 보색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그 대비 효과는 흰색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 그림은 시냐크가 1896년 브뤼셀에서 개최된 '자유미학 아방가르드 전'과 그 다음해 봄 파리엣 열린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작품 중 하나이다. 유명 문예지 <르뷔 블랑슈(Revue Blanche)>의 발행인이었던 나탕송은 이 그림의 광채에 주목하였고 잡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능숙하고 훌륭한 솜씨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 뛰어난 구성 속에서 찬란하고 감동적인 색채가 날카롭게 전해오며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에는 고요함이 서려있다. 이 그림은 경탄할 만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Port St. Tropez 1899; Musee de l"Annonciade, St. Tropez


레장들리, 둑



시냑은 파리에서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강 굽이에 위치한 노르망디 지방의 센느강 골짜기에 마음을 빼앗겨 1886년 여름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그는 통상 바닷에서 여름을 보내곤 했는데, 그 해에는 제2회 독립예술가 협회 살롱전 개최위원회 소속되어 있던 터라 가급적이면 파리에서 가까운 곳에 머물고자 했던 것이다. 시냑은 센느 강가에 펼쳐진 다양한 그림의 소재와 생동감 있는 색채에 매료되어 다시 옹플뢰르에 있던 쇠라에게 이곳을 알려 주었다. 쇠라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답변을 보냈다. "자네는 채색된 레장들리를 바라보고, 나는 센느강을 바라본다네, 푸른 하늘과 강렬한 햇빛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치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곳이지." 그는 8월21일에 개최된 독립예술가협회 살롱전에서 1886년6월부터 8월 사이에 그린 네 점의 레장들리 풍경화를 선보였다.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색채불할법이 적용된 그의 작품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최근 그림들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밝은 빛으로 가장 완벽하게 그려졌다. 색채들은 아주 빠르게 번지며 기쁨에 겨워 소리지른다. 흐르는 센느 강물 속으로 하늘과 강가의 푸르름이 흐른다." 시냑은 전시회가 개막된 후에 레장들리로 돌아와 여섯 점의 그리을 더 그렸다. 이 때 그린 작품들이 그가 첫 번째로 완성한 신인상파의 풍경화 연작이다. 이곳에 온 시냑은 폐허가 된 유명한 가이야르 성 아래의 자그마한 레장들리의 집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마을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림 속 센트강은 우측 위편의 숲이 우거진 섬과 함께 그림의 주요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8월에 그려진 이 그림은 1886년 독립예술가 살롱전에는 전시되지 못했으나, 그 다음해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귀스타브 칸은 그림의 생동감과 빛에 매료되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시냑은 나무 숲으로 가득한 강 어귀를 자주 그렸었다. 물 위에 반사된 나무들과 촘촘히 붙어 있는 집들, 빨래하는 아낙네들과반짝반짝 빛나는 바둑판 무늬의 경작지까지...찬란한 정오의 햇살이 기쁨과 환상으로 충만한 풍경 속에 자리잡고 있다."



마르세이유 항구 입구 (1911년)


우산을 쓴 여인



양산을 들고 있는 이 여인은 베르트 로블레이다. 그녀는 카미유 피사로의 먼 친척으로 1880년, 폴 시냑이 <검은 고양이>라는 카바레에 머무르고 있을 때 만나게 된 사이이다. 그 때부터 시냐크는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했과, 이 그림을 그리기 몇 달 전인 1892년 11월 7일 시냨의 부인이 되었다. 시냐크가 신인상주의의 방식으로 완성한 초상화의 수는 많지 않다. 주로 그와 가까웠던 가족과 친구들을 그린 연작들로, 현재 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명학 작가이자 비평가인 페릭스 페네옹을 1890년에 그린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였던 베르트를 그린 이 작품이 가장 마지막에 그려졌다. 양산 아래에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클로드 모네가 야외에 있는 인물들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인상주의자들이 사용한 방식을 시냐크 역시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신인상주의의 방식으로 주제를 해석하였다. 이 작품은 녹색과 대비되는 주황색이나 빨간색, 그리고 노란색에 대한 보라색처럼 색의 병치를 통한 대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원근법이 드러나지 않는 이차원 평면, 즉 깊이나 입체감을 통한 환영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양산으로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약간의 양감이 느껴질 뿐이다. 비록 이러한 제작방식들 통한 작품의 정적인 분위기가 모델의 경직 된 자세에 의하여 더 강화되고 있지만, 소매의 아라베스크 무늬나, 양산, 그리고 꽃이나 손잡이의 술고 같은 세부장식을 통하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있다. 시냐크의 이러한 색의 병치는 쇠라와 함께한 신인상주의 기법으로 보다 순수하게 색을 표혆고자 한 두 화가의 노력의 결실이다. 이를 통해 형상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물감을 섞지 않고 시각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클 것이다.



The Bonaventure Pine in Saint-Tropez 1892; Oil on canvas; Houston


등불 아래 여인



작품 모델은 베르트 로블르이다. 인물의 헤어 스타일과 얼굴의 특징적인 프로파일은 둘 다 신인상주의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포착되는 요소이다. 이는 당시의 수학자 샤를 앙리의 기하학적인 공식과 계산에 근거한 것이고, 작품에서 그녀의 옆 얼굴의 세심한 각도도 이러한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확한 윤곽선과 분활된 색채들은 분명 쇠라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작품을 위해 그가 제작한 매우 주의깊고 용의주도한 습작들은 지금까지 시냑의 작품에서는 이례적인 것이며, 역시 쇠라의 영향으로 보인다. 보통 시냑은 습작에서는 인물과 배경을 대략적으로 다루었으나 쇠라는 매우 큰 작품을 위한 사전 습작이나, 각각의 개별 스케치를 그릴 때에도 항상 마무리된 작업으로 완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작품은 그가 같은 해에 제작한 <식당>에서 나타나는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는 자세의 여인과 동일한 인물로 추측되기도 하지만, 실내 장면의 배경을 표현하는 데서 이 작품의 배경은 치밀한 분할된 색채가 아니라 활발하고 경쾌한 붓터치로 다루어 묘사하고 있다는 데서 차이점을 지닌다. 이러한 붓터치는 자연 광선이 아닌 실내의 램프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빛의 효과를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내의 램프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더욱 극명하게 만들어지는 빛과 어둠의 대조를 표현하고자 했다. 인물이 독서에 집중하는 분위기와 램프 빛의 퍼짐, 색채의 기하학적인 분할과 견고함은 시냑의 작품들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 작품은 캔버스가 아닌 나무 위에 그려졌는데, 이와 같이 나무에 그려진 시냑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그가 같은 해 1887년 1월에 그린 <눈, 몽마르트>가 있다.



Port of La Rochelle 1921; Oil on canvas, 130 x 162 cm Musee d"Orsay, Paris


파리 변두리



1880년대가 시작될 땝터 젊은 폴 시냐크는 몽마르트의 풍경과 파리외곽의 그림을 통해 도시풍경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별히 그의 모친과 살고 있던 아스니에르에 대한 풍경도 그림으로 그렸다. 파리의 북쪽 교외를 그린 이 그림은 그가 도시와 그 주변의 풍경에 보여주었던 관심의 한 예이다. 비록 공업화된 지역은 화면 가운데의 지평선 끝에 자그마하게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화면의 넓은 공간에 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표지판들과 말라빠진 몇 그루의 나무들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인간의 활동이 전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풍경이라는 점이다. <파리 변두리 젠느빌리에의 거리>에서는 여전히 모네의 영향이 보인다. 시냐크는 1880년 <현대 생활 리뷰>사무실에서, 또 1883년 듀랑 루엘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도 인상파 대가의 작품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평면적인 색상으로 구성된 전경의 구성은 1870년대에 모네가 그린, 특히 그가 1871년부터 1878년까지 아르장튀유에서 머물면서 그린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이 풍경화는 또한 10여 년 전에 시슬레와 피사로, 카유보트가 그린 교외의 풍경과 주제면에서, 스타일면에서 명백하게 유사한 점이 보이 기도 한다. 그러나 이듬 해인 1884년 제1회 앙데팡당전에 처음 출품하면서 만남 쇠라와 친교를 맺게 되고, 이후 그와 함께 색채의 동시대비 이론과 기법을 연구했다. 1886년 인상파 최후의 전람회에 쇠라와 함께 작품을 발표하면서, 신인상주의자로서 불리게 되었다.



Port St. Tropez 1899; Musee de l"Annonciade, St. Tropez


강가, 에르블레의 센 강



1889년 시냑에게 아버지의 존재와 같은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카시스로부터 떠나게했다. 그러고 그는 파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에르블레에서 8월과 9월을 보냈다. 그곳에 당시 점묘법 화가인 막시밀리안 루스도 방문하여 몇 주간 함께 지내기도 하였다. 지금은 큰 도시로 그 풍경이 많이 변모했지만, 당시 에블레르는 센강 연안의 시골 마을이나 다름 없었다. 시냑의 친구이자, 작가인 조르주 르콩트 는 과거 시냑과 함께 에르블레에서 지냈던 평화로운 나날들을 회상한다. "에르블레에서 일요일, 시냑의 보트는 당시의 상징주의 소설 작가의 그룹을 태우고 아름다운 섬으로 바람을 맞으며 항해했다." 시냑은 1889년 에블레르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6점의 작품의 3점의 습작을 그렸다. 에르블레를 그린 작품들 중 하나인 <강가, 에르블레의 센강>에서 그는 강의 하류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위치를 택하여 풍경을 담아내었다. 의도적인 단순한 구성은 시골이라는 소박한 장소의 특징과 프랑스 지역 특유의 빛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고, 이는 까미유 시파로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이 시기는 수학자 샤를 앙리의 선과 색의 특징과 관련하여 회화의 기하학적 이론이나 평면적이고 단순한 구성의 일본 판화등이 회화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발전시켜 가던 시기였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뱃길과 흰색 집들의 묘사는<강, 에르블레>에서도 동일하게 보이지만 그것은 먼 거리의 언덕 꼭대기에 종탑의 위치에서 바라본 것이다. 강을 따라 다니는 작은 보트가 수평선 위로 보이는데, <강, 에르블레>에서 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있다. 이 작품에서 안개는 약화시키고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체 화면에서 파란색과 녹색은 다소 창백하게 보이고 오렌지색은 아예 사라졌다. 파란색과 노란색이 살짝 섞인 흰색 물감만이 화면전체를 덮어 대상의 정확한 윤곽을 사라지게 만들고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매력적인 시각 효과를 내며 태양의 햇빛 아래에서와는 완전히 달라보인다. 시냑은 화면 안의 대상인 구도보다는 색으로 표현되는 대기의 효과에 큰 관심을 두었다. 그에게 빛은 작품 전체의 색조를 결정한다. 그의 작품은 비슷한 장소와 비스스한 대상, 비스스한 위치에서 색의 사용에 변화를 주어 작품 전체의 근복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


퐁 데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