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가시 / 정호승

#경린 2013. 5. 19. 11:30

 



가시 / 정호승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

 



무심히 부는 바람 심장 시리게 하는 아픔 양어깨 짓누르는 힘겨움 눈물나는 슬픔 가슴으로 삭이는 분노 세상살아감이 모두 가시밭길이라지만 그 속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가 봅니다. 꽃의 고운 빛깔도 향기로움도 희망의 꿈을 키워 가슴마다 꽃을 피워 내고 피워 낸 그 꽃을 지키기도 하는 가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새 가는 곳마다 장미꽃 고운빛깔과 향기가 발길을 잡는 계절입니다. 장미꽃 바라보는 동안만이라도 세상살이 시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어 좋은 계절이 이 때가 아닌가 싶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