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천년의 세월을 같이 하는 석남사 노거수들

#경린 2014. 1. 6. 00:27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시간에 언양에 도착을 하니 배꼽시계가 요란
일단은 배를 채우기 위해 별미 언양불고기로 냠냠하고
목적지인 가지산 석남사로 고고씽~~


세속의 세상에서 부처님의 도량으로 들어서는 일주문
석남사의 일주문은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변과 바로 인접하여 있지만
그 도로 자체가 산을 깎아 만든 길인지라 입구에서 부터
아름드리 노거수들이 긴 세월을 얹은 듯 휘어진 허리로 맞아준다.

 


일주문을 지나면 딱9분만 걸으세요라는 나무사잇길이 나온다.
자연그대로의 길도 아니며 더더구나 흙길도 아닌 시멘트의 블럭이
깔린 이 어줍잖은 길을 절집을 찾는 이들을 배려하며 새로 만든었다 한다.
왜 이길을 만들었을까??  인위적으로 길을 내기 위해 나무들도 많이
파 내었을것 같고 길 오른쪽은 계곡이라 흙도 더 가져다 부었을 것 같은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많은 돈까지 들여가며 
이렇게 스스로의 자연을 훼손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무사잇길로 들어서면 소나무와 노각나무의 안고 있는 모습이
언짢았던 마음에 미소를 주며 흐뭇하게 들어 온다.
소나무가 먼저 터를 잡았고 그 뿌리에 노각나무 씨앗이 날아든 듯,
나와는 맞지 않은 이방인이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함께 하는 모습도 
나무사잇길을 만든다며 흙을 돋우고 뿌리를 괴롭혀 숨쉬기도 힘들었을 것인데
그 모든걸 견뎌내며 함께 하는 모습이  대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석남사로 올라가는 9분이라는 그 짧은 시간에 만나게 되는 노거수들은
하나같이 예사롭지가 않다.
하늘을 받쳐 이고 있는 아름드리 서어나무
역시나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족쇠 채우듯 뿌리쪽이 갑갑하게
인공물로 둘러쳐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웅장하고 늠름한 모습에 감탄사를 자아내게 된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몇 백년 세월의 주름인가 흐르는 시간을
고스란히 이고지고 안고 하늘아래 늠름한 모습

 


두 세사람이 안아야 안을 수 있는 크기의 소나무
소나무가 2~300년이 되면 껍질이 6각형으로 변해서 
꼭 거북 등 같이 모양이 바뀐다는데, 그 거북 등껍질같은 껍질이 
사람의 손바닥보다도 더 컸고 하나하나의 문양도 예롭지가 않아
절로 손이가 스다듬게 된다.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생을 다하였는지 질곡의 삶을 내려 놓으려는 노목들의 모습도 눈물겹게 들어온다.
곤충류를 많이 먹여 살리는 나무로 잘 알려진 참나무 종류의 떡갈나무는
오랜 삶의 쌓임 같은 둥그렇고 무거운 짐을 놓지 못하고 힘겹게 서 있다.
그 옆에 노목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는 노각나무는
이 땅에서 300년이나 살았다는데
몇백년을 함께 한 저들은 지금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

 


떡갈나무와 노각나무의 맞은편에 있는 부도밭 역시나
노거수들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고승들의 사리(舍利)를 모신 묘탑(墓塔), 부도탑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수 백 년 동안 지키고 가꿔 온 
우리의 숲과 나무들이 개발과 쉼터 마련이라는 명목 아래
제 설 곳을 잃고 외마디 울음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 보며
얼마나 통탄 하였을지........

 


사람들의 많은 발길이 닿은 듯 반질반질 윤이나는
근육질 같은 뿌리를 드러낸 우람한 서어나무

 


이름난 산 치고 유서 깊은 사찰 한 둘 품지 않은 산이 없고
유서깊은 사찰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그 속에는 어김없이 노거수들이 웅장한 자태로 함께 하고 있다.

 


옛 수행자들은 나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당대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중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를 드나들면서 
숲의 전령사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배롱나무, 파초, 불두화, 
상사화, 차나무, 참죽나무 등이 스님들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식물들이다.
이렇게 들여온 나무들을 사찰 경내에 심거나 
사찰 주변 숲에 심어 가꾸었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유서 깊은 사찰일수록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나 숲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나무들을 심고 가꾼 것은 사찰과 사찰의 수행자들이다. 
김재일<108 사찰 생태 기행 시리즈>에서 옮겨 옴

 


이렇듯 오랜세월 소중하게 가꾸고 지켜 오며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허파라고 일컬을 정도로 중요한
사찰주변의 숲이 자연조건과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임도건설,
힐링한 삶을 위한 편안하게 걷는 길을 위해 파헤쳐지고 있는 것이다. 

 


살짝 겨울얼음이 언 계곡의 물소리가 더 가까와 질 즈음
1240m 가지산을 병풍삼은 석남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지산 주변은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문화재나 관광 명소가 많다.
산의 동쪽에 있는 석남사는 신라 시대의 고찰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가지산과 운문산은 암산[女山]이라 
수도승이 각성할 무렵이면 여자가 나타나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석남사는 
주변의 운문사, 대비사와 더불어 비구니전문수도 도량이다.

 


석남사의 노송들 역시 일제의 대검과 도끼에 파인 깊은 상처를
밑동에 안고도 아리따운 자태로 늠름히 살아 가고 있다.

 


아니 그런데 이건 또 무슨....보는 눈을 의심케 하는 모습
노각나무의 대단한 생명력에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가만히 보니 살아 내려는 의지를 담은 
그 뿌리의 뻗음이 또한 놀라움이다.
스님들의 목기를 만드는데 많이 사용해서 그런가
석남사에는 초입에서 연리지 노각, 바위를 뚫은 노각,
몇백년을 살아 속이 빈 노각 등 노각나무가 많았는데
이 노각은 녹각이 변해서 된 이름으로 줄기의 무늬가 
사슴 뿔을 닮은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석남사 입구 특이한 구조의 침계루와
석남사 경내를 에워 싼 돌담은 성벽 같은 느낌이었는데
계곡을 둘러 쌓아 올린 돌담도 만만치 않은 것이 
그 옛날에는 참으로 가파른 산비탈이었을 것 같다.

 


드디어 반야교를 건너 석남사로......

 


석남사는 평지 가람이 아니고 산지 가람이다.
그래서 좁은 산지 터에 언덕을 깎아 만든 평지에
건물들을 지어 마당이 그리 넓지 않다. 
큰기둥에 뚜렷한 상륜을 이고 마당을 채우고 있는 삼층 석가 사리탑
이 탑은 원래 절 창건주 도의국사가 신라 헌덕왕 16년에 호국의 염원을 빌기 위하여 
세운 15층의 대탑 이였던 것을 임진왜란 때 파괴 되어 탑신의 기단만 남아 있던 것을 
1973년 인홍(仁弘)스님의 원력으로 원래 탑의 남은 부재를 모아 없어진 부위는 다시 
만들어 지금의 삼층탑으로 다시 세웠다 한다.
원래 탑이 15층탑이었다는데 왜 삼층탑으로 싹뚝 잘라 복원을 하였을까??
다 없어지고 남아 있었던을 가지고 하다보니 그리된 듯....
15층석탑 그대로 복원이 되었더라면 그 규모가 참으로 엄청났을 것 같다.

 


오래전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곳 앞에 섰다.
큰애가 생후17개월 일 때....11월의 가을날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출입금지구역인 이 곳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불러내며
찰칵 기념촬영을 했던.....

 


앨범을 뒤지니 사진이 있어 올려 본다.
이 사진을 방송국에 응모하여 상품을 받은 적이 있기도 하다.^^
저 낮은 문 아래로 쏘옥 나올 수 있었던 그 작았던 아이가...
세월이 참 많이 흘렀는데 사진의 색이 바래지 않아 다행
사진과 기록은 역시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추억을 불러다 주는
소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석남사에는 대웅전 앞 삼층탑 말고도 또 다른 삼층석탑이 하나 더 있다. 
석남사에서 제일 오래된 작은 석탑으로 원래 대웅전 앞마당에 있었는데 
그 자리를 복원한 큰석탑에 내주고 극락전 앞마당으로 옮겨지게 되었단다.
비록 큰석탑에 밀려 나기는 했지만 신라석탑의 형식을 취하고 
조성 시기를 통일신라로 보는 문화재이다.

 


약500년 전에 간월사에서 옮겨 왔다는 엄나무 구유
사찰내의 여러 대중스님들의 공양을 지을 때
쌀을 씻어 담아 두거나 밥을 퍼 담아 두었던 그릇이라는데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절의 규모를 알만하다.

 


석남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다 자칫 잘못하면 귀중한 보물급 
문화재를 놓치고 만다. 바로 신라 고승 도의국사(道義國師) 사리탑인 
부도를 보지 못하고 가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생활과 건강이라는 잡지 칼럼을 쓰기 위한 소재를 찾다가
석남사 노거수들을 쓰야겠다하고 사진들을 살피니 그냥 스치고 온 것들이 있어
나 역시나 지기와 두 번 걸음을 하였다.^^
번거로운 걸음 마다 않고 늘 함께 해주는 지기가 항상 고마움이다.^^

 


대웅전 뒤 돌담길을 따라 가면 도의 국사 부도가 나온다.

 


울주 석남사 승탑  
신라 헌덕왕 때 석남사를 창건하고 입적 하신 도의국사의 부도탑이다.
소나무들이 부도탑의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 믿음직하다.

 


도의선사 부도탑을 보고 되돌아 나오면 석남사의 가람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빠른 걸음으로 가려하는 겨울오후의 햇살을 잡아 놓은 가람의
기와지붕이 품어내는 운치는 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한다. 

 


길을 만든다거나 담을 쌓아 올린다거나 그러한 이유가 아닌
오랜 세월 삶을 다하여 밑동만 남게 되었을 거라 믿고 싶은
흔적만 남은 거목의 밑동

 


내려오는 길 계곡 옆으로도 어김없이 들어오는 노목의 범상찮은 모습들

 


자연그대로의 길, 오랜 삶을 이고 진 노목들이 
오래오래 잘 보호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또, 7월에 흰 꽃을 피워 은은한 향으로 말을 건다는
노각나무를 만나러 다시 찾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