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경린 2014. 3. 1. 18:55

 



장쾌하다. 정연한 자태, 위대한 건축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 등 부석사에 대한 어느 글에서든 '아름답다'라는 형용사가 빠지지 않는 절집 언제부터 가 보고 싶었던 영주 부석사를 다녀왔습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봉황산 중턱, 태백산맥이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제 갈 길로 떠나가는 양맥지간에 자리잡은 부석사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은 은행나무 가로수길이라 노란은행잎이 융단으로 깔린 계절에는 이 길 또한 그 아름다움의 형용사에 톡톡한 한 몫을 하는 길일 듯합니다.

 


일주문을 지나니 옛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탱자나무 가로수가 나옵니다. 
탱자나무 뒤로는 사과나무 과수원인데 작년 초겨울에 이 곳에 들렀던 
아들은 달랑달랑 하나 달려 있던 사과를 따 먹기도 하였다합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오르는 길 중턱에 절집의 깃발을 게양하던 
당간의 버팀돌인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었는데 그 높이가
상당하였고 늘씬한 몸매에 세련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천왕문까지는 상당한 거리였었는데 완만한 비탈길이라
느긋하게 자박자박 걸을 수 있는 명상로로 지겨운 줄은 몰랐습니다.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 여기부터가 부석사 경내가 됩니다.

 


천왕문을 지나 적당한 경사면의 쾌적한 길을 다시 오르니 
근래에 만들어진 듯한 문이 또 나옵니다.

 


문을 통과하며 살짝 보게 되는 풍경에서부터 감탄사가 새어나왔지요

 


계단을 다 올라서서 딱 마주하게 된 풍경은 우와! 였습니다.^^
절집가람의 배치가 역시 여느 절집과는 다르고 범상치 않은 자태를 보여줍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는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먼저 반겨 주었습니다.
이 탑은 원래 부석사 동쪽 일명사터에 있던 것을 1966년 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라하는데 그럼에도 부석사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범종루, 안양루를 거쳐 무량수전으로 이르게 되는 가람의 배치와 위대함으로 표현대는 건축물의 미학을 한눈에 담아보려하였지만 한 프레임에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산의 비탈을 깎아 평지로 고르고 돌계단 돌축대를 쌓아 나열 된 건물 하나하나가 자연의 일부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부석사는 신라 때인 676년(문무왕 16)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집으로
13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졌고 보물급 문화재도 즐비한 곳입니다.
학생들 춘계방학 기간에 주말이라 그런지 찾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봉황산부석사라고 쓰여있는 범종루로 오릅니다.

 

범종루를 지나 안양루로 가기 전의 마당에 있는 약수를 마셔보았습니다. 물맛이 아주 시원하였습니다. 안양루 뒤 편으로 부석사의 보물 무량수전의 처마밑 황금색이 살짝 보이자 맘이 설레이기 시작했습니다.

범종루의 법고


천하의 방량시인 김삿갓도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서 감탄을
하였다는데 그 광경이 코 앞이니 당연 설레임이었지요.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부석사의 돌축대들을 가만보면 똑 같은 크기의 돌이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생긴 그대로의
자연석을 부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를 맞추어 쌓은 것입니다.
낱낱의 개성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게 쌓아 올린 것이
더 아름답게 다가옴을 알 수 있습니다.
안양루는 범종루와 마찬가지로 2층 건물이 출입문과 
누각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안양루 앞에 걸린 부석사라는 현판은 1956년 이승만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쓴 것이라 합니다.

 


극락을 뜻한다는 안양루를 통과하여 무량수전 앞마당에 당도하면
아름다운 자태의 아담한 석등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석등은 현존하는 석등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각솜씨를 자랑한다 합니다.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석등, 공민왕이 썼다는 무량수전 현판,
그리고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 오랜 역사를 가진 무량수전의 수려한 목조건물,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문살 등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의 상주처인 무량수전 건물은 1043년, 고려 정종9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집으로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을 더 위로 본다합니다. 안에 들어가서 보니 모셔져 있는 불상도 대단하였습니다. 나무로 불상의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진흙을 발라서 만든 소조불에 도금을 한 소조여래좌상은 크기도 크고 강하고 건장하게 보였는데 그 엄숙함에 카메라를 들이밀지 못하고 깊이 삼배하고 나왔습니다.

 


무량수전 앞마당 입구의 안양루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태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스라이 보이는 태백산맥의 산과 들이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펼쳐져 들어옵니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라합니다. 제가 간 날은 미세먼지 탓인지 날씨 탓인지 흐릿하여 장쾌한 장관을 담아 낼수가 없었지만 웅대한 스케일이 옛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 본 풍광을 시문으로 읊은 연유를 알 듯 하였습니다.

 


그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 보았습니다.^^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의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유의하여 볼 부분은 평면의 안허리곡(曲),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배흘림, 항아리형 보 등의 의장 수법으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착시에 의한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고안된 고도의 기법들이라 합니다.
기둥에는 현저한 배흘림이 규모에 비해 훤칠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기둥머리는 34cm, 기둥밑은 44cm, 가운데 배흘림부분은 49cm로
그 곡선의 탄력이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대단한 건축미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더 유심히 살펴 보았지요.^^

 


무량수전 왼 편에 있는 부석입니다.
부석사를 부석이게하는 부석으로 또 창건설화가 깃들어 있는 바위이기도 합니다.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하는데요. 밧줄을 넣어 요래조래 해 보면 거침없이 통과한다니 
정말 붕 떠 있는 뜬 돌인 듯한데 그 이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부석사 창건주 의상대사를 모신 조사당으로 가기 위해 무량수전 오른편으로 난 길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들은 지난번 왔을 때 조사당 문이 잠겨 있어 내부도 보지 못했다며 별 볼 것도 없는데 그 길을 올라 갈 것이냐 합니다. 당근히 여까지 와서 안 올라 가 본다는 것이 말이 아니 되지요.^^ 볼 것이 없다니...에효 역시 어린맘의 눈에는 그러한가 봅니다. 제가 오래 전 부모님 따라 다녔던 그 눈과 맘을 보는 듯했지요. 세월이 흘러 나이가 이 만큼 되고 보니 어디 하나 애달프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 때는 그걸 왜 몰랐을꼬입니다.^^

 


무량수전 동쪽 언덕에 있는 보물 부석사 삼층석탑을 지납니다.
이 탑은 창건할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아래층이 넓어 장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에 있는 작은 석등은 귀여움이었구요.^^
석탑 왼 편의 작은 건물은 선묘각입니다.
의상대사와의 로멘스와 창건설화를 함께 하고 있는 선묘낭자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다하는데 건물이 작아 그냥 스치듯 지나치게 되는 듯합니다.

 


가파른 계단 저 위에 보이는 건물이 조사당입니다.

 


잘 포장된 시멘트 길 보다는 울퉁불퉁하지만 자연그대로의
길이 더 멋스럽고 정겹습니다.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이 소박한 건물 또한 
고려시대의 맞배지붕 목조건물중에서 수덕사의 대웅전과 함께
가장 단순하면서도 건축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국보라합니다.
다행히 조사당의 문이 열려 있어 모셔진 의상대사의 초상을 보았습니다.
보노라니..의상대사를 그리도 흠모하였다는 선묘낭자의 초상도 이 곳에
같이 모셔 두었더라면...하는 생각이....그러면 아니 되는 것인감요?? ^^

 

조사당 앞에는 저게 뭐야 싶은 닭장같은 철제구조물이 있는데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에서 잎이 나오며 자랐다는 골담초를 보호하는 구조물이라고 합니다. 차아암 보기가 그러했습니다.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고 그 잎을 달여 먹으면 애기를 가질 수 있다는 신비한 골담초(선비화)를 저도 유심히 보았는데요. 이궁..저게 뭐야 싶은...원래가 자라지 않는 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상대사가 꽂았다면 도대체 저나무의 나이는 몇 살이야?? 그런데 그 나이치고는 좀 그렇다 싶으기도 하고....^^

 

그냥 둘러 보아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동선을 사진까지 찍는다고 호들갑을 떨어사니 아들이 짐짓 퉁명한 소리를 하면서도 조사당을 나와 나한상을 모신 단하각과 응진전이 있고 자인당이 있는 오솔길로 안내를 하였습니다. 아들이랑 같이 오지 않았더라면 못 보고 왔을 지도 모를 위치의 외진 곳을 따라오라며 앞 서 가는 아들이 귀엽기도하고 든든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들과 함께 아니 그 뒤를 따르며 느끼는 이 든든함.....아...이런 기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들애가 친구들과 왔을 때는 문화해설사가 해설을 해 주어 제대로 둘러 본 듯하였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따뜻하게 다가오면서도 그 햇살이 만들어낸
나무그늘이 참 운치 있는 길이었습니다.

 


응진전 입구의 대문 역할을 하듯 나무가 뿌리를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다 큰물이 져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습니다.

 


단하각, 응진전, 자인당이 고요속에 모습을 보입니다.

 

조금은 외진 곳이라 그런지 무량수전 앞, 정말 많은 사람들의 북적임과는 완전 대조적으로 이곳은 한적했습니다. 저에게는 아들과 함께 흙길을 돌아 낙엽밟는 소리를 들으며 여유로운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습니다.

 


무량수전 뒷 쪽 숲까지 다 둘러보고 내려오니 태백산맥 전체를 정원으로 안은
부석사에 오후의 햇살이 퍼져 온화하게 들어옵니다.
부석사는 해질녘이 가장 아름답다고 유홍준 교수님의 책에 쓰여 있었는데
갈 길이 바빠 해질녘까지는 머무르지를 못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였지요.^^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 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을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최순우 <무량수전> 중에서


내려오면서 아쉬움에 자꾸 뒤돌아보니 아들이 기념사진을 찍어줍니다.
두고두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