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비가 오신다 / 이대흠

#경린 2015. 6. 15. 21:25

 



비가 오신다 / 이대흠 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가 온다는 말은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구강포쯤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에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을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입술이 보타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나는 꽃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도회지라고 비가 없으랴. 험프리 보가트 조로 바바리 깃을세우고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를 걸어가는, 그것 또한 아주 족보에 없는 비는 아닐 터이다. '미련 없이 내뿜은 담배 연기 속에' 그 여인의 모습을 아련히 떠올리는 <진고개 신사>풍의 가을비와 우수도 그럼직하다. 도시의 소란과 잡답을 일거에 제압하는, 천둥번개 우당탕 느닷없는 여름 소나기가 또한 통쾌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비가걸어서'도 오고 때로 '달려'서도 온다는 것.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것. '씩씩거리며' 싸우러 오는 병사 같은 비가 있는가 하면, 지아비를 전쟁터에 보내고 골목길 돌아오는 아낙의 걸음새같이 막막한 비도 있다는것. 실제 그렇다는 것. 이 시에 따르면, 이쯤의 분간은 있어야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안다고 말발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그쯤의 분간으로 비를 앎직한 이라야, 더불어 인생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호하고 분명한 이 심미적 자신감에 통쾌히 동의한다.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