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능소화 시모음2

#경린 2015. 6. 29. 15:50

 


능소화 /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능소화 / 산오자 더위 먹고서야 어벙하게 가슴을 여는 꽃 장대비와 새우비를 피해 처마 밑의 벽이나 나무 등걸을 타다 정작 높이 올라서는 비 맞고 피어나는 꽃 우리 집 마당에 능소화가 져서 바람에 날리며 딍군다 세월 가면 그녀도 능소화 향기로 색깔로 내 방문 앞에 보고픔에 날리어 오랜 그리움으로 서성일까

사진 : 남평문씨 세거지


능소화 / 나태주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 떨어지는 어여쁜 슬픔의 입술을 본다 그것도 비 오는 이른 아침 마디마디 또 일어서는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저 능소화 / 김명인 주황 물든 꽃길이 봉오리째 하늘을 가리킨다 줄기로 담벼락을 치받아 오르면 거기 몇 송이로 펼치는 生이 다다른 절벽이 있는지 더 뻗을 수 없어 허공 속으로 모가지 뚝뚝 듣도록 저 능소화 여름을 익힐대로 익혔다 누가 화염으로 타오르는가, 능소화 나는 목숨을 한순간 몽우리째 사르는 저 불꽃의 넋이 좋다 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 흘리는 천근 사랑 같은 것 그게 암 덩어리라도 불볕 여름을 끌고 피나게 기어가 그렇게 스러질 너의 여름 위에 포개리라


장마가 찾아올 즈음이면 지금쯤 피었겠다 찾아가 보고싶은 꽃이 능소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피어날 시기에 맞추어 피어나 먼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신통방통..... 때 맞춰 가뭄끝에 장마가 찾아오니 반가움이 배로 다가오는 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