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글

박완서 산문집 '호미 - 흙길 예찬' 중에서

#경린 2016. 6. 12. 16:09





흙길을 걷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느끼기만 하면 된다. 요샌 한창 땅기운이 왕성할 때다.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산천초목을 통해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흙길을 걷고 있으면 나무만큼은 아니라도 풀만큼도 못하더라도 그 생명력의 미소한 부분이나마 나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힘이 비록 나에게 이르러 잎이나 꽃이 되어 피어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 풍진 세상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면 어찌 미소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땅기운과의 이런 편안한 친화감에 힘입어 나도 모르게 기도하게 된다. 이렇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만 살게 하소서, 라고. 허나 이렇게 엄청난 욕심이 어찌 기도가 되겠느가, 응석이지 박완서 산문집 '호미 - 흙길 예찬' 중에서




여름소나기가 후두둑 쏟아지면서 흙내음이 후욱 올라온다. 흙길을 밟는 빗방울도 땅기운을 느끼며 기쁜가보다 덩달아 흙이 뿜어올린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생글생글 방글방글

사진 : 창원동읍 우곡사 입구 저수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