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땅 - 안도현 / 나팔꽃

#경린 2017. 10. 30. 10:30




나팔꽃은 타고 오를 그 무언가가 없으면 바닥에 엎드려 살아야 한다.

비가 오면 온몸에 흙탕을 뒤집어 쓰면서도 어쩔수 없다.

맨날 보는 것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 뿐일수도 있다.

꼬불꼬불 온 힘을 다해 넝쿨을 뻗어도 오를 곳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언제나 바닥인 인생..



다행이다.

저 나팔꽃은 아주까리를 친구 삼아서....

아주까리 잎이 우산도 되어 주고

울타리도 되어 주고

서로가 서로의 친구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선물같은 존재로



땅 / 안도현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보랏빛 나팔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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