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들판은 시집이다 - 이기철

#경린 2018. 3. 29. 11:37



들판은 시집이다 - 이기철

 

   

   천천히 걷는 들길은 읽을 것이 많이 남은 시집이다

   발에 밟히는 풀과 꽃들은 모두 시어다

   오전의 햇살에 일찍 데워진 돌들

   미리 따뜻해진 구름은 잊혀지지 않는 시행이다

   잎을 흔드는 버드나무는 읽을수록 새로워지는 구절

   뻐꾸기 울음은 무심코 떠오르는 명구다

 

   벌들의 날개 소리는 시의 첫 행이다

   씀바귀 잎을 적시는 물소리는 아름다운 끝 줄

   넝쿨풀은 쪽을 넘기면서 읽는 행이 긴 구절

   나비 날갯짓은 오래가는 여운이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혼자 남는 파밭

   종달새 날아오르면 아까 읽은 구절이 되살아나는

   보리밭은 표지가 푸른 시집이다

   갓 봉지 맺는 제비꽃은 금방 곡을 붙인 동요다

 

   벅찬 약속도 아픈 이별도 해본 적 없는 논밭

   물소리가 다 읽고 간 들판의 시집을

   풀잎과 내가 다시 읽는다

 

 

   이기철 시집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




문 열고 나가 마주하는 것 들 마다

형형색색 고운 시들을 쓰고 있는 요즘입니다.

매일이 같은 날들이고 같은 모양이었는데

어느날 보면 휘릭 바꿔진 모습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꽃이 피어나니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