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귀한 손님이 오다

#경린 2021. 2. 21. 18:43

 

새해가 시작되는 연초 주말을 이용해 아들이 여자 친구와 같이 온다는 전화가 왔다.

"엄마, 주말에 00이 데리고 내려갈 거니까 맛있는 거 해줘"

청량한 새끼뻐꾸기 소리를 들은 듯 설중 매화향기를 맡은 듯 반가움이었다.

함께 살고 있지못하는 아들의 방문은 늘 반가운 일이지만 여자 친구까지 데려온다니 배가 되었다.

아들 여친을 처음 본 건 작년 초여름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내가 박사논문 마무리로 그야말로 정신없을 때라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한정식집에서 점심만 같이 먹고 보냈다. 호수를 한 바퀴 할 요량으로 그 한정식집을 선택했는데 그날따라 너무 더워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뒤에 들으니 여친이 창원은 처음이라 차로 창원 시내를 한바퀴 드라이브하고 유명한 까페가서 차도 마시고 했다하여 잘했다 했다.

이번이 두번째 만남인데 내 손으로 대접하는 음식을 해 주고 싶었다. 아들에게 넌지시 물으니 아무거나 잘 먹는다 하였다.

아무거나 잘 먹고, 식물 좋아하고, 손재주도 좋고, 절집 다니길 좋아한다며 엄마랑 닮았다 한다.

ㅋㅋ.. 녀석 맘에 쏙 드나 보다. 많이 좋아하나 보다.

 

뭘 하지?

요즘 사람들은 뭘로 손님 상차림을 하나?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생뚱맞은 것은 못하겠고 가끔이라도 해 먹는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실수가 없을 것이다.

 

늘 올 수 있는 손님도 아니라 밥도 좋지만 코스요리와 같은 요리를 하면 골고루 맛보기에 좋을 듯하였다.

일단 아들이 좋아하는 소갈비찜과 새우 치즈구이를 기본으로 하여, 부채 조개 치즈구이, 삼겹살 야채말이, 납작 만두, 손님상에 빠질 수 없는 잡채, 그리고 튀김요리도 하고 싶어 새우튀김과 오징어 튀김을 하기로 했다.

밥반찬이 아니고 요리로 먹을 음식이라 전체적으로 느끼한 듯하여 칠리새우 해물볶음을 추가하고, 국물로는 맑은 된장국, 마지막으로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준비하기로 결정.

 

지기가 좋은 소갈비와 치마살, 부채살을 사 다 줘서 소고기 초밥도 하고 싶었지만, 딸이 소갈비찜 있는데 투머치라고 빼라 해서 뺐다.^^

 

 

 

 

야채 썰기와 삼겹살 야채말이, 잡채, 튀김, 해물 다듬기 등은 아이들 오기 전날 미리 준비 해 두었다.

갈비는 물에 담가 두었다가 여러 번 헹구어 압력솥에 월계수 잎, 소주, 통후추 넣고 초벌로 삶아 내어 깨끗이 씻은 다음 양념하여 찜을 만들어 딸아이와 맛을 보았다. 잡채도 미리 다 볶아 만들었다.

부채 조개는 살짝 데쳐 씻었고, 납작 만두는 대구 쪽에 날짜 맞춰 주문한 뒤 야채를 채 썰어 랩 씌운 뒤 모두 냉장실에 보관하였다. 튀김은 초벌 튀겨 기름종이에 싸고, 새우는 등 갈라 내장 빼내고 버터에 굽고, 야채들은 다듬어 씻어서 물기를 빼 두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 입에 들어갈 음식 준비라 힘든 줄 몰랐고 신나기만 하였다.

덕분에 당일 토요일은 널러리 여유롭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토요일 천천히 일어나 국부터 끓이고 삼겹살로 야채를 말아 노릇노릇 구워내었다.

새우와 부채 조개 치즈구이는 너무 일찍 구워내면 치즈가 굳어 버리기 때문에, 아들이 다 와 간다 싶을 때, 버터에 구워 둔 새우는 양파 마요네즈 양념과 치즈 얹어 에어프라이어로, 데쳐 둔 부채 조개는 야채와 치즈 얹어 오븐으로 구었다.

초벌구이 한 튀김은 높은 온도에 얼른 다시 한 번 더 바싹하게 튀겨 내었다. 납작 만두는 노릇하게 굽고 야채를 함께 싸 먹도록 쏘스뿌려 보기 좋게 세팅했다. 잡채와 갈비찜은 먹을 만큼만 살짝 다시 볶고 데워서 내었다.

숙주나물의 아삭함이 살아 있도록 아들과 여자 친구가 온 다음 칠리 야채 새우볶음은 불 요리를 하였다.

리코타 치즈는 우유 1리터로 딸아이가 금요일 저녁에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굳혀 두었다가 준비 해 둔 야채와 과일을 세팅하고 소스 뿌려 마무리했다.

 

작년 한 해 대학 졸업하고 9개월 정도 집에서 취업준비를 하며 보낸 딸아이는 이제 제법 요리를 잘한다. 손님 치는 날 도움이 되었다. 취업 안 된다고 안달하기 보다는 그러한 시기를 가지는 것도 생에 참 좋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에 너도 남자 친구 데려 오면 이렇게 해 줄게"

"당근이지"

 

두고 먹을 요량으로 갈비찜과 잡채는 넉넉히 하였지만 나머지는 딱 상에 올릴 양만큼만 하여 종류는 몇 가지 되어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이들 도착하고 손 씻는 동안 상차림을 마무리 지었다.

6인용 식탁이 꽉 찼다. 소고기 초밥을 빼길 참 잘했다.^^

"이런 상 받아 보는 거 처음이에요"하며 상차림을 보고 아들 여자 친구는 감탄하였다.

사진을 찍으며 기분 좋아하여 나 또한 흐뭇하고 기분 좋았다.

아들은 여자 친구에게 엄마가 만든 갈비찜이 정말 맛있다며 먼저 권했다.

아들 여자 친구는 아들이 평소에도 엄마 갈비찜 자랑을 하였다며

"말처럼 정말 맛있네요.  좋아한다 해서 저도 만들어 봤는데 이 맛이 안 나더라고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쁜 아이가 말도 참 이쁘게 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 분위기를 화하게 만들어 주어 많이 웃는 즐거운 식사시간이 되었다.

 

점심 먹고 딸아이가 절여 둔 자몽으로 에이드를 만들어 마무리하였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한 달 이상 지난 일인데도 포스팅을 하며 미소가 지어진다.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 해 주고 싶었고, 환영의 의미를 담뿍 담은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예전 생각이 났다. 우리 때는 어땠지?

잊고 살았고 한 번도 떠 올려 본 적도 없었다.

먹고살기 바빴던 시절이라도 사위가 오면 암탉을 잡았다는데 며느리감이 왔을 때는 어찌했다는 말은 왜 없을까?

며느리감은 인사 오는 그날부터 대접을 받더라도 설거지는 해야 했을까?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하고 소매를 걷어 올리기에 이다음에 하라고 했지만 말이라도 그리 하는 것이 기특하게 보이는 것은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예비 시어머니이기 때문일까?

나의 경우는 어땠는지 기억에도 없는 듯하고 굳이 생각 해 보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진 듯하다. 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는 오랜 병환 중이셨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큰 환대는 꿈에라도 생각해 볼 수 없었던 형편이었다. 나도 아들의 여친처럼 살갑게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라고 하였을까?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 그렇게 말하였을 듯하고, 그리 말하는 아들 여친이 기특해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며 신이 났고 설레이기도 했다.

그것으로도 족했는데 귀한 손님의 음식을 정성 들여 준비하니 덩달아 귀한 사람이 된 듯한 행복했던 기억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