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갤러리

유화-갯바위와 파도, 갯바위의 꿈

#경린 2021. 12. 23. 11:10


화실 원장님께 그림 그릴 소재를 하나 달라고 하였더니 붉은 단풍나무, 갈대가 있는 들판 그리고 물과 바위가 있는 위의 사진을 프린트해 주셨다. 그 중 하나를 골라보라 하셨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과는 거리가 있는 소재들이라 딱히 그리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래도 굳이 고르라면 물과 바위가 있는 사진이라 했으나 어찌 그려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도 하여 망설였다.

망설이는 나에게 원장님께서 이런 게 공모전용 소재라며 그대로 그리기만하면 되고 선생님은 그릴 수 있을 것이라 부추겼다.
사실은 여러 사람에게 그려 보라고 매번 권했는데 늘 퇴짜를 맞았다하였다.
표현 해 내기가 난해하기도 하였지만 다들 익숙하지 않은 소재라 썩 맘에 들어오지 않아 퇴짜를 놓은 듯하다.

일단은 그리기로 결정을 하고 이곳이 계곡인지 바다인지 묻자 막상 원장님께서는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하였다..
따개비도 보이고 굴 껍데기도 보이는 것이 바다 같다고 하였더니 눈썰미가 대단하다 하였다..
원장님께서는 갯바위 낚시를 즐겨하시니 이미지가 바로 맘으로 들어왔던 것 같다.

공모전용 소재라 하여 귀가 솔깃하였고, 여러 사람이 퇴짜를 놓았다니 한번 그려 볼까 하는 오기가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선호하는 소재가 아니라 공모전용 50호는 일단 그려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10호 캔버스에 먼저 그리기로 하였다.


10호 F (53X45.5) 기업인노동자가족미술작품공모전 금상


구도도 색도 그대로 그리면 된다 하셨지만 색이 맘에 들지 않았다.
바위도 파도도 맘에 드는 색감이 나오지 않아 여러 번 덧칠을 하였다. 사진보다 푸른색과 보라색 느낌이 더 강해졌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맘에 들었다.

화실 동료들은 이런 그림 그리려면 스트레스 엄청 받겠다고 염려하였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그렇지 않았고 색을 다시 올리는 동안 변해가는 그림이 더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렸던 것 같다. 딱히 꼼꼼한 성격은 아닌데 엄청 꼼꼼한 성격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주말과 휴일에는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릴 때가 많았다. 세밀하게 표현을 해야 해서 10호 그림치고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기저기 몇 군데 좀 더 수정할 곳이 보이기도 하지만(포스팅을 하면서 다시보니 확실하게 보이기도 한다) 10호는 일단 마무리를 하였다. 원장님께서는 생각보다 빨리 완성하였다 하셨고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고도 웅장하게 잘 표현하였다며 화실에 걸어 놓고 가라 하셨다.

덧칠을 거듭하면서 그림에 새록새록 정이 들었다. 내가 칠하는 대로 따라오는 그림을 보면서 애증의 관계가 형성된 듯하다. 제목을 '파도의 꿈'으로 하면 어떨까? 파도가 키워내는 갯바위나 거기에 사는 굴, 따개비, 홍합, 게도 리얼하게 그려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닷가로 한 번 나가 봐야겠다.

찡그리고 볼 때는 썩 맘이 내키지 않았다. 좋은 그림이 나올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반달눈 하고 입 꼬리 올리고 보니 다음 그림 그릴 때는 어찌해야 되겠다는 궁리도 하게 되었고, 바닷가 풍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걸 어찌 그리나 걱정하던 친구들도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보며 나도 그려보고 싶다거나 일렁이는 파도 아래에 고기를 그려보라고도 하였다. 파도의 일렁임이 포인트인데 그 아래 고기의 유영을 넣어도 괜찮을까?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저마다 관점의 차이에 따라 생각의 나아감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 생각 한 끝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보이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한다는 걸 새삼 또 알아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