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이야기

능소화 / 구중 궁궐의 꽃 / 능소화 연가 - 이해인

#경린 2010. 7. 14. 01:17


능소화 연가 / 이해인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나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능소화는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고, 상민의 집에 
이 꽃을 심으면 관가에서 잡아다 곤장을 때리고 
두 번 다시 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여, 
양반꽃이라고 불렀다 한다. 

또한 "기생꽃"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언제나 화려한 자태로 요염함을 과시하다가 꽃이 시들기 전에 꽃모양이 흐트러짐 없이 통꽃 그대로 떨어지는 특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능소화의 특징은 덩굴의 길이가 자그마치 10m에 달하고 줄기 마디마디에서 뿌리가 생겨 다른 사물에 잘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 꽃의 개화기가 6월 말에서 8월이라 , " 능소화가 피면, 장마가 진다"라는 말도 있다.
이 꽃의 꽃가루에 독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런 것이 아니고, 사실은 꽃가루의 미세 구조가 갈퀴와 낚시 바늘을 합쳐 놓은 듯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일단 피부에 닿으면 잘 떨어지지 않고 염증을 일으키기 쉬운데, 특히 눈은 점액이 있고 습기가 있어서 일단 부착 되면 눈을 비비게 되어 자꾸 점막 안으로 침투하고 심한 염증을 유발하며, 심하면 백내장 등 합병증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실명한다는 속설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능소화는 "구중궁궐(九重宮闕)의 꽃"이라고도 불리우는데, 그것을 꽃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옛날 궁궐에 자태와 용모가 매우 곱고 아리따운 '소화'라는 복숭아빛 뺨을 가진 예쁜 궁녀가 있었다.
눈에 띄게 아름다운 그녀가 임금의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고, 어느 날, 임금이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게 되고, 그렇게 소화는 임금과 꿈과 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빈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신분상승으로 처소가 궁의 한 곳에 마련이 되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이지, 그날 이후로 임금은 소화의 처소를 찾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빈의 자리에 오른 여러 빈들의 음모였다. 그녀를 시샘하여 온갖 음모로 소화는 궁궐 가장 깊은 곳의 처소까지 밀려나게 되고. 여느 궁녀들 같았으면, 어떻게 해서라고 갖은 술수로 임금을 꾀었겠지만, 착한 소화는 그러지를 않았다.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소화는 임금이 찾아 오기만을 매일 매일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 가까이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았나 해서, 담장아래서 서성이며 행여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귀를 기울이고, 혹여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로 고개를 세우기도 하며, 식음도 거의 전폐하다시피 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는 중에 기다림의 세월도 제법 흐르고, 소화의 임금에게로 향한 애끊는 마음은 점점 병으로 이르러, 영양실조와 상사병에 급기야 정신을 읽고 , 쓰러지게 되고, 곧 죽고 말았다.
권세를 누린 빈이었다면, 초상도 화려하게 치뤄졌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가련한 여인은 초상조차 제대로 치뤄지지 않은 채, 초라하게 담장가에 묻혔다.
언제까지나 임금을 기다리겠노라며, 자신이 죽으면, 담장가에 묻어달라는 그 유언대로 시녀들은 시행했던 것이다.
그 후 담장밑에서 덩굴이 올라와 예쁜꽃을 피웠는데, 그 꽃이 바로 '능소화'이다.





능소화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 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하다.
소화가 오매불망 임금을 기다리며 그랬듯이, 담장에 축축 늘어지며,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더 높이 휘감고 오르며, 발자국 소리를 더 잘 들으려 더 넓게 꽃잎을 벌린 듯한 모습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것 같다.
내내 기다리다 지는 순간에도 기품을 잃지 않고 시든 모습이 아닌 꽃송이째 뚝 뚝 떨어지는 능소화!
기다림의 화신이 되어버린 능소화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임금님 외에 그 누구도 자신의 몸에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 혹여 누군가 능소화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꽃을 따거나, 떨어진 꽃을 줍기만 해도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 실명까지도 한다는 속설을 보면 소화의 한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한여름 어디선가 아름다운 능소화를 만나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능소화는 오로지 멀리서 눈으로만 바라보며 감상해야 한다는 걸..............


 



사진 : 풀꽃님 (http://blog.daum.net/wildfl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