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만 살고 죽자◇
―배움에 대한 욕심이 상당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친구가 영어책이라며 보여주는데 울컥했다.(웃음)
‘I am a girl. You are a boy’라고 읽는 거라며 가르쳐주길래,
두 번째 월급 받은 날 서점에 가서 ‘국어완전정복’과 ‘영어완전정복’을 샀다.
마침 내가 일하던 집이 한의원이어서 곳곳에 한자가 적혀 있었다.
무슨 뜻인지 궁금해했더니 주인 할머니가 천자문 책을 주시더라.
그때 시작한 한자공부가 사서오경까지 이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을 읽을 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책 속의 세상은 바르고 아름다웠다.
‘잘못한 것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란 글귀가 좋더라.
아버지와 엄마에 대한 미움과 증오, 슬픔의 감정들도 책을 읽으면서 치유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지 책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식모를 그만두고 직업훈련원으로 갔다.
“반상회보에 무료 직업학교 훈련생 모집이라는 광고가 났다.
기술을 배우면 식모 월급 3만원보다는 많이 벌겠다 싶더라.
양재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건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서 기계편물로 지망해 6개월간 배웠다.”
-기술을 배우면서 검정고시도 치렀다.
“그때는 중졸, 고졸이라는 학력이 무척 갖고 싶었다.(웃음)
낮에는 기술 배우고 밤에는 야간학원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책상이 높으니 의자에 책을 몇 권 깔고 앉아 공부했는데,
앉은 자세로 있으면 허리에 통증이 심해져 집에 돌아가 두 시간씩 울었다.
그래도 좋았다. 무언가를 새로 배울 땐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육체적 고통도 잊을 수 있었다.”
―국내외 기능대회를 섭렵했다.
1983년 전국장애인기능대회, 1984년 전국기능대회 편물 분야에서 금메달을 땄고,
1985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세계장애인기능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손으로 뭔가를 하는 일에서는 뒤처진 적이 없는 것 같다.
허리와 다리가 약한 반면 손의 힘이 상대적으로 발달했다.
뭘 새로 배우는 걸 겁내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어도 빠르고 정확하게 한다.
오래 서 있으면 허리가 아프니까 뭐든 빨리빨리다.(웃음)”
―책에는 직업훈련원 다니던 시절 신앙을 갖게 됐다고 적혀 있더라.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에도 울지 않았을 만큼 내 마음은 닫혀 있었다.
직업학교 들어갈 때 종교를 쓰라기에 ‘자신교’라고 썼을 정도다.(웃음)
세상에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학교에 와보니 나를 위해 걱정해주고
내 앞날을 염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부모님도 걱정해주지 않던 내 앞날을 말이다.
하나님을 믿어서가 아니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그들이 고마워 교회를 따라다녔다.(웃음)”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었지.(웃음)
심지어 친구들 걸음속도를 못 따라가 혼자 뒤처질 때도 죽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죽어 없어져도 세상은 돌아가지 않나.
내가 죽어서도 저 별이 빛날 것 같으면 무슨 소용이냔 말이지.
그래서 결심했다. 좋아, 죽을 때 죽더라도 오늘까지만 살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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