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청도 운문사(雲門寺) - 구름도 쉬어 가는 천년고찰

#경린 2012. 5. 18. 12:21

운문사내에서 입구쪽을 바라본 모습



구름도 쉬어 간다는 천년고찰 운문사(雲門寺) 창원에서는 차로 1시간40분~2시간정도 소요되는 거리라 그리 자주 가지는 못하는 곳이지만 갈 때마다 정갈한 이미지와 태백산맥 끝자락의 멋진 풍광, 그리고 그 운치에 늘 취하곤 하는 곳이기도 하다. 휴일을 이용하여 주어진 시간내에 운문사를 다녀오기로 결정하고는 예전처럼 휘리릭 바람 쐬고 부처님전에 삼배 드리고 오는 정도의 발걸음이 아닌 좀은 계획을 가진 여행이 되고파 운문사에 대한 자료를 모아 보았다.

 

대웅보전 앞 삼층석탑



천년고찰이니 만큼 정보도 많았고, 유적답사를 하듯 그 곳의 내력을 알고 가는 것은 느끼는 바가 다가오는 바가 확실히 다르기도 하였다. 특히 유홍준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와 있는 운문사에 대한 글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파란색 글부분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가져온 글임) 유홍준교수님께서는 "늙어서 정년퇴직하고 나면 청도 운문사 앞 감나뭇 집을 사서 여관이나 하면서 사는 것이다." 라는 소원을 가질 정도로 운문사에 대해 남다른 감회와 사랑을 가지고 계셨기에 자세히 그의 책에 소개를 하고 있었다.

 




유홍준님 교수님께서 운문사 근처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은 다섯가지 이유를 대략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거기에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어서 항시 사미니계를 받은 200여명의 비구니 학인스님이 있다. 앳된 비구니를 바라볼 때면 뭔지 모르게 눈도 마음도 어질게 됨을 느낀다. 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눈을 닦는다. 2. 장엄한 아침예불이 있기 때문이다. 250여명의 낭랑한 목소리가 무반주 여성합창으로 금당 안에 가득할 때 우리는 장엄하고 숭고한 음악이 무엇인가를 실수없이 배울 수 있다.

 

담장너머는 비구니스님들의 거처이다

 




3. 운문사 입구의 솔밭이다. 늠름하면서도 아리따운 홍송의 자태는 그것을 보며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4.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이다. 운문산, 가지산 연맥으로 이어진 태백산맥의 끝자락, 그 안온한 분위기는 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한겨울 눈이 쌓였을 때 저 위쪽암자, 사리암이나 내원암에서 내려다보면 운문사가 가장 운문사답게 보인다. 5. 내 존경에 존경을 더해 마지않는 일연 스님, 답사기를 쓸 때면 가장 먼저 찾아보는 그분의 <삼국유사>가 여기에서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석조석가여래좌상.사천왕 석주



운문사는 신라진흥왕때 창건 되어졌으나 대부분의 건물이 조선시대에 신축되었다. 평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큰 규모의 사찰이지만 일주문 천왕문이 없다. 그러나 운문사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하다. * 보물 제193호인 금당 앞 석등(팔각석등) -당대 불교예술의 혼이 그대로 담겨진 화려한 모습 * 보물 제208호인 운문사 동호(동항아리) - 문화재도난을 우려 해 일반에 공개 하지 않음 * 보물 제316호인 운문사 원응국사비 - 고려시대 원응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

 

원응국사비



* 보물 제317호인 운문사 석조석가여래좌상 - 작압전에 모셔져 있음 * 보물 제318호인 운문사 사천왕 석주 - 석조여래좌상옆을 지키고 있는 4개의 돌기둥으로 부처를 모시는 단의 사방을 지키는 방위신이다 * 보물 제678호인 운문사 삼층석탑 - 대웅보전 앞에 있는 신라시대 탑 * 보물 제835호인 운문사 비로전 - 원래는 비로전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으로 불리운다. - 본존불을 모시면 대웅전, 대웅보전이라하고 비로자나불을 모시면 비로전 이라 한다. - 조선시대 새로 지으면서 본존불을 모심

 




운문사를 몇 번이나 들른적이 있으나 나는 한 번도 운문사의 솔밭길을 걸어 올라가 본적이 없었다. 언제나 차를 타고 그 숲길을 지나치면서 감탄사만 연발 담에 오면 꼭 저길을 걸어서 올라보리라만 반복했었다. 드디어 그 길을 손 잡고 걸어보았다. 위 올려진 세로의 사진이 차가 올라가는 길이고 아래 사진이 걸어서 올라가게 되어 있는 흙길로 <솔바람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숲길이다.




차로 매번 올라가다보니 차도와 인도가 이렇게 따로따로 마련 되어 있는 줄을 몰랐다. 차도도 또한 늠름하고 아름다운 노송들이 양옆으로 호위하고 있어 멋스럽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은 다음 주차를 시키고 솔바람길이라고 이정표가 붙은 솔나무 사잇길을 일상의 번잡함을 놓고 여유로운 맘으로 지기와 손잡고 걸으니.... 솔바람이 솔솔~~~

 




청정한 솔숲의 운치와 숨쉬듯 흐르는 맑은 산수,소소한 풀꽃들, 풀벌레 우는 소리, 풀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내는 정다운 소리,
솔숲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솔바람소리,
그윽한 솔내음 풀내음, 숲그늘의시원함.....
한참을 걸어도 다리 아프지 않을 길이었는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어가면서 걸었더니
너무너무 짧고 아쉽게만 느껴지는 길이기도 하였다.

 




걸어서 30분의 거리라고 했었는데 기분학상으로는 10분도 아니 걸린듯하였고 다 왔구나하는 안도의 숨보다는 그저 아쉽다는 맘이 가득 옆 도로에는 여전히 차들이 쌩쌩 바람을 일으키며 쉼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나역시나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저렇게 쌩쌩 올라갔었는데 이 길을 걸어보지 않았더라면 어쩔뻔 했을거나 하는 생각 절로 들었다. 차로 올라도 물론 보는바와 같이 아름답고 감탄사 연발이지만 걸으면서 함께 호흡하는 느낌과는 비할바가 못 된다.



아리따운 자태로 말하든, 늘씬한 각선미로 말하든, 늠름한 기상으로 말하든, 연륜의 근수로 말하든 운문사 소나무는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소나무이며, 조선의 힘과 자랑을 가장 극명하게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운문사 소나무는 조선의 아픔과 저력, 끈질긴 생명력까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운문사의 노송들은 그 밑동이 마치 대검으로 찍히고 도끼로 파인 듯한 큰 흠집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일제 말기 '대동아전쟁' 때 송진을 공출하기 위하여 송진 받아낸 자국이다. 그들은 석유 대용을 위하여 이 송진으로 송탄유(松炭 油)를 만들어 자동차를 운전할 정도로 발악하였다.

 




노송들의 상처들은 생각보다 엄청 컷었다. 직접 보기전에는 칼집 낸 상처 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아효....세상에나.... 대검과 도끼로 칼집을 낸 상처에 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보수를 한 것도 있었지만 상처가 곪아 터져 버린 것들도 있어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느 나무하나 멀쩡한 것이 없이 큰상처를 안고 있었다. 죽지않고 긴 세월을 아픔과 분노를 이겨내며 의연하면서도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소나무들이 눈물겨웠다.

 




운문사 솔밭의 행렬이 끝나고 낮은 기와돌담이 한쪽으로 길게 뻗은 벚꽃나무 가로수길로 접어들면 그것만으로도 운문사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벚꽃이 피고 꽃잎이 날릴 때를 맞추어 온다는 것은 나처럼 '운문사 동네'에 사는 사람이나 가능할 일이다. 그러나 사계절의 어느 때이고 이 길은 당신을 황홀하게 맞아줄 것이며 특히나 눈 쌓인 겨울날이라면 아예 이곳에 머물며 살고 싶어질 것이다.
돌담의 기와에는 이끼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날아온 뽀리뺑이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기도 했다. 담장 안쪽으로의 노목의 벗나무는 꽃을 다 떨구고 초록을 한껏 올리고 있었지만 그 굽은 곡선은 기와와 조화를 이루어 꽃이 없어도 한껏 멋스럽고 기분좋은 산책길을 연출 해 주고 있었다.

 




운문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마당 하나들 가득 채우고 있는 소나무 사람들이 운문사의 명물로 꼽는 400년 수령의 장대한 처진소나무, 일명 반송(盤松, 천연기념물 180호)이다. 매년 이 소나무에 봄, 가을로 막걸리 열두 말을 부어 준다고 한다. 올봄에도 비구니스님들께서 부어 주는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환한 송화를 가득 피우고 있었다.

 




대웅보전 앞 석등은 한 쌍으로 되었는데 헌것하고 새것하고 섞어서 헌 받침에 새 몸체, 새 받침에 헌 몸체를 붙여서 두 개 다 짝짝이... 아마도 쌍탑의 배치와 맞춘다고 새것을 하나 더 세우면서 새것이 어색하지 않게 보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운문사의 큰 실수였다. 본래 석등은 하나만 모시는 것이 불가의 불문율이다. 아무리 절마당이 커도 석등은 하나만 모시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불문율이 아니라 <시등공덕경>에 "가난한 자가 참된 마음으로 바친 하나의 등은 부자가 바친 만 개의 등보다도 존대한 공덕이 있다"는 구절에 근거를 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목백일홍... 한여름 꽃이 피면 울메나 이뿌고 멋질거나....^^ 저 뒤로 보이는 누각이 우리나라 사찰내에 있는 누각중에서는 그 규모가 제일로 크다한다.(200여평) 겨울이 되면 메주나 물말랭이를 말리는데 그 장면 또한 볼거리라고 한다. 지금은 불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청도 운문사가 보존하고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은 새벽예불이다. 사람들은 기행이나 답사라고 하면 아름다운 경승지나 이름높은 유물을 찾아가는 것으로 생각하며 시각적 이미지의 유형문화재만을 염두에 두곤 한다. 그러나 운문사의 답사는 반드시 새벽예불을 관람하거나 참배하는 음악이 있는 기행으로 엮어져야 제 빛을 발하게 된다. 그것이 힘들다면 저녁예불이라도 보았을 때 운문사를 답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벽예불은 도량석으로부터 시작된다. 예불 30분 전에 요사채와 법당 주위를 돌면서 목탁을 두드리며 독송하는 도량석은 새벽예불의 서주, 판소리로 치면 다스림에 해당된다. 그리고 250명의 비구니들이 법당 안에 정연히 늘어서서 의식과 함께 행하는 새벽예불은 곧 무반주 여성합창이다. 도량석을 독송한 스님은 새벽예불에서 도창(導唱)이 되어, 합창이 일어나면 감추어지고 합창이 가라앉으면 다시 일어나는 변주의 핵심이 된다.

 




비구니 스님들께서 거처하는 곳은 출입금지 구역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담너머에서 까치발하고 보기만 했다. 정갈하고 깔끔하면서도 너무너무 조용.....스님은 한 분도 아니보였다. 운문사에 가면 조앙신을 모시고 있는 공양간을 꼭 보아야한다 했는데 보지를 못 해 아쉽기도 하였고, 위 숲길 역시 출입금지 구역이라 들어가보지 못해 저 다리를 건너 보지 못 해 아쉬웠다. 언젠가는 꼭 운문사의 새벽예불을 보고싶고 듣고 싶다. 이른아침 낮고 짙게 깔린 구름사이로 파고드는 목탁소리, 또 얼마나 맘을 파고들어 심정을 맑게 해 주겠는가..... 오래전 해질녘 밥공양즈음에 피어오르던 굴뚝의 하얀연기와 밥 짓는 내음이 아직도 내맘에 내기억에 남아 피어 오르메 쉬이 보지 못하는 운치는 쉬이 잊혀지지도 않는 듯하다. 언젠가는.......꼭......

 




청도 운문사는 겨울이 가장 아름답다. 눈 덮인 운문사의 전경은 그 자체가 성속을 떠난 평온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입버릇처럼 겨울날의 운문사를 말하곤 하였는데 나의 지기에게 운문사에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더냐고 물으니 지체없이 봄을 말한다. 사리암 오르는 길을 따라 운문산 학소대 쪽으로 가면 산비탈마다 낙엽송이 즐비하거든요. 이른봄 낙엽송에 연둣빛 새순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면 얼마나 곱고 예쁜지 몰라요. 새 생명에 대한 예찬이 절로 나와요. 그러나 운문사로 가는 길은 여름날이 더욱 아름답다. 어디에서 들어오든 길가 여름꽃들이 마치도 환영객들로 도열하여 축하의 손짓을 보내는 듯한 축복의 여정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꽃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시골길을 달릴 때가 가장 행복한 여로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민달팽이 집은 어찌하고 나왔는지....... 꽤 큰 몸집의 달팽이였는데 어디를 향해 가는지..... 그늘이 아닌 햇살아래로 방향을 잡고 쉼없이 기어가고 있는 모습 그대로 두면 말라죽을 것이 뻔했다. 맘 씀씀이 고운 울지기 나뭇잎 가지고 와서 숲 그늘로 옮겨 주고.....^^

 




내려 오는 길도 솔숲길따라 솔바람따라.......^^ 운문사 내가 갔던 날도 정말 아름다웠다. 언제가도 좋은 곳이 아닌가 싶다. 역사적인 문화재 뿐만아니라 멋진 풍광과 함께 온갖가지 종류의 야생화들도 많아 맘도 몸도 편안한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닌가하는........ 운문사가는 가로수 길가에 양귀비를 심어 두어 그 또한 참 반가움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차 세우고 찰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