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세계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그가 사랑한 여인들

#경린 2013. 3. 13. 11:01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92세의 나이까지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5만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피카소 이런 미술에 대한 열정만큼 사랑에도 열정적이었던 화가로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이야기 할 때는 빠짐 없이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그가 사랑한 7명의 여인들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습니다.

 

피카소의 첫연인 '페르난도 올리비에' 파리의 빈민굴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그의 첫번째 여인은 23세 동갑내기인 육감적이고 쾌활한 성격의 유부녀 페르난도 올리비에 입니다. 친구의 죽음으로 불안하고 침울했던 피카소는 그녀의 헌신적 도움으로 우울한 청색을 벗고 장미빛 시대로 변신하여 입체파풍의 작업을 많이 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린 그림이 '아비뇽의 처녀들'입니다.

 

가냘프고 여성스러운 '에바 구엘' 올리비에의 친구이자 폴란드 화가 루이스 마르쿠스의 애인이었던 에바구엘은 피카소를 사랑하였고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인 피카소는 '나는 에바를 사랑해'라는 문구를 그림에 넣어가며 사랑을 표현하였고 화폭은 음악과 춤 그리고 연극의 종합적 큐비즘 시대를 열며 밝아집니다. 그렇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에바는 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는데 피카소는 야속하게도 에바가 병으로 쓰러졌을때 자기에게 감염될까봐 혼자 이사를 갔었으며 문병다나는 동안에도 다른 여인을 만나기도 하였다 합니다.

 

첫부인 '올가 코클로바' 36세때 피카소는 25세의 발레리나였던 올가와 첫 결혼을 합니다. 우아하고 고전미 넘치는 발레리나 올가는 유부녀 였는데 피카소가 그녀에게 반해 1년 연애 끝에 결혼했고 그때부터 고전주의 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안락의자에 앉은 그녀의 모습을 정성들여 사실주의로 그린 '올가의 초상'에서 그녀에 대한 사랑이 느껴 지지요. 그런데 피카소는 첫 아들 파울로를 낳고 올가를 버립니다. 끈임없이 피카소의 눈은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반짝였으니까요.

 

첫눈에 반한 17세소녀 '마리 테레즈' 금발머리에 생기발랄한 소녀 테레즈는 46살 성공한 피카소의 프로포즈를 거절하였으나 끝없는 구애에 결국 부모의 동의가 필요없는 18세의 생일 때 허락을 합니다. 10년간 피카소의 최고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테레즈는 성적 환상으로서 화려한 초현실주의 인물로 잘 묘사되어 집니다. 테레즈는 22살에 피카소의 딸을 낳았지만 바로 그해 피카소는 세련되지 못하고 무식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버립니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 영감을 준 청순하고 순정적인 여인으로 피카소가 죽자 그를 따라가 보살펴야 겠다고 자살한 불행한 여인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지적인 여자 '도라 마르' 친구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만난 화가이며 사진작가였던 그녀와 살고 있던 1937년에 피카소의 고향인 스페인에서는 내란이 일어났고 그 유명한 '게르니카'가 이 때 탄생 합니다. 게르니카를 그리는 전 과정을 도라는 사진으로 기록하였는데 이 와중에도 테레즈와 피카소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많이 싸웠고 그녀의 생활은 '우는 여인'(위의 그림)등에 잘 나타나 있다 합니다. 굴욕과 고통을 참지 못한 도라는 피카소를 "한 예술가로서는 훌륭할지 모르지만 도덕적으로 말해서 당신은 가치없는 인간이야"라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네요. 그후 정신착란증이 생겨 평생을 전기충격과 약물치료속에서 지낸 불행한 여인이기도 합니다.

 

피카소를 차버린 유일한 여자 '프랑스와 질로' 피카소 나이 62세때 40살 연하인 22세 법대 출신의 지적인 처녀를 만납니다. 법학대학과 미술석사 공부를 한 부유한 가정의 프랑스와즈 사이에는 아들과 딸을 두었으며 피카소의 그림에 유모차를 밀거나 애들과 놀아주고 있는 여인의 그림이 이때부터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도 예전의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여자들과 하나도 다를것 없는 인생을 살고있음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고 그때쯤 자신을 처음 만나 사귀고 있을때 만났던 여기자와 아직도 계속 관계를 지속 해오고 있음에 격분해 피카소에게 결별을 선언하자 피카소는 자살소동까지 하며 그녀를 협박하나 결국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지만 그의 아이들은 법정을 통해 피카소의 자식으로 입적시켜 훗날 피카소의 많은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후 프랑스와는 포리오 백신을 발명한 솔스박사와 재혼 합니다. 여성편력이 심한 피카소가 한 방 먹은 샘이지요.^^

 

마지막 여인 '자클린 로크' 자클린(30세)은 피카소(당시72세)가 최고의 명성을 누린 시기에 만나 1961년 비밀리에 결혼합니다. 피카소의 두번째 결혼입니다. 그녀는 피카소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던 도자기 공장 관리인 마담 라미에의 조카로서, 도자기 공장의 뒷일을 보살피던 젊은 이혼녀였습니다. 어떻게 여든이 다 된 노인네와 결혼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다'라고 했답니다. 자클린은 말년에 피카소가 그림에만 전념 하도록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으며 이때 작업에 몰두한 또다른 예술 형태의 도자기그림이 유명합니다. 그녀는 피카소가 죽은 후 한번도 자기집 창문의 셔터를 열지 않았고, 식탁에는 피카소의 자리를 늘 마련했으며 노래까지 불러 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1986년 마드리드 전시회를 앞두고 권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한 예술가의 생애, 그의 뒤를 따라간 그의 여인들 피카소의 열정적인 사랑은 그의 미술에 대한 천재적인 두뇌에 예술적 혼을 불어 넣어 주었고 20세기가 낳은 현대 미술의 거장 내지는 현대 미술사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달게 해 준 원동력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많은 여자들이 흘린 눈물도 보이는 듯합니다.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