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세계

미술사 최고의 스캔들 / 마네의 올랭피아 . 풀밭위의 식사 .서정욱의 명화는 스스로 말한다.

#경린 2013. 2. 23. 23:10

마네 . 풀밭 위의 점심 식사 . 1863년 캔버스에 유채



미술사 최고의 스캔들 / 마네의 올랭피아 19세기 세계 미술의 중심은 파리였고, 파리의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그 당시 모든 화가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살롱의 심사위원들 대부분은 보수적이어서, 그들의 기호에 맞지 않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낙선되는 부당함을 겪게 되었죠. 이에 분노한 젊은 화가들은 거칠게 항의했고 이는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반발을 무마 시키기 위해 나폴레옹3세는 낙선작 700점을 모아 '낙선작 전시회'를 열어 주었습니다. 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간주되는 이 낙선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인 세잔, 모네, 피사로, 휘슬러 등이 있었으며, 마네는 <풀밭위의 식사>를 출품해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16세기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의 동판화인 '파리스의 심판'

마네 풀밭위의 식사는 오로지 마네의 상상으로 그려진 그림은 아니라고 합니다. 남녀의 포즈는 라이몬디의 동판화 파리스의 심판에서 차용했다하네요. 위 붉은 테두리 안의 인물들의 포즈를 보세요. 상당히 유사하죠.

파리 근교의 숲에서 중산층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벌거벗은 여인들과 대낮에 한가로이 놀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여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을 너무나도 태연하게 응시합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이 그림을 그린 마네는 인상주의를 시작한 화가입니다. 인상파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죠. 당시 주말이면 중산층이 센강가로 나가 오찬을 즐기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런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한 것은 과감한 시도였습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이 품위를 존중하는 살롱전에 출품되었으니, 관람객들이 경악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당시 대중들의 항의와 소동은 빗발쳤고 파리의 모든 언론은 마네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심지어 성난 관람객에 의해 그림이 훼손될 것을 염려해 이 그림만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티치아노의 '전원교향곡'

티치아노의 전원교향곡에서는 두 여자가 옷을 벗고 있고 두 남자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참고 했다합니다.

사실 마네는 자신에게 쏟아질 엄청난 비난을 예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네의 작품은 근대 미술사에 있어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스캔들을 불러 일으켰고, 그 후 마네를 중심으로 젊은 화가들이 인상파를 형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뒤인 1865년, 이미 유명해진 마네는 또 한번 파리시민에게 충격을 던집니다. 바로 그 유명한 <올랭피아>라는 작품입니다.

 

마네 . 올랭피아 . 1863년 . 캔버스에 유채



냉소적인 표정으로 침대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창녀 올랭피아, 손님이 왔음을 알려주는 흑인 하녀의 꽃다발, 주인에게 팔려가길 바라는 노예의 상징으로 목에 둘러진 검은 리본, 부정을 의미하는 고양이, 마네는 그림 여러 곳에 다양한 의미를 숨겨 놓았습니다. 몰론 그 당시에도 여인의 누드는 흔한 소재였지만 그리스 신화의 여신이나, 여신의 이미지를 담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네는 그저 아름다운 누드를 그리며 누드화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파리시내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창녀의 적나라한 벗은 몸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 역시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림 주변에 경찰을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은 욕설과 야유로 넘쳤고 심지어 흥분한 관객이 지팡이를 휘둘러 그림을 찢어버리려 하는 소동까지 일으켰다고 합니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캔버스에 유채

마네의 올랭피아는 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참고 하였다합니다.

미술사상 최고의 스캔들을 일켰던 두 작품, <풀밭위의 식사>와 <올랭피아>는 지금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아주 당당하게 걸려 있습니다. 이제는 관람객들도 당당하게 감상합니다. 서정욱의 <명화는 스스로 말한다> 중에서

 

카바낼의 '비너스의 탄생'

우피치 미술관 카바낼의 '비너스의 탄생'은 같은 시기 1863년에 살롱에 전시 된 그림으로 대단한 호평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같은시기 같은 누드화인데도 악평을 받았던 마네의 누드화와는 달리 호평을 받은 이유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신을 묘사한 그림으로 현실이 아닌 이상속의 희로인을 자연의 일부로 표현했기 때문이라네요. 하여 나폴레옹 3세가 이 작품을 즉각 구입하였고, 이 작품 덕분에 카바넬은 에콜 데 보자르 교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화속 여신의 나신은 자연의 일부로, 선망의 대상으로 동경하고 애호하면서 동시대 여성의 나신은 부끄러움으로 여겼다는것..... 예나지금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참 쉬운일이 아닌듯합니다.^^ 한편으로는 남자들이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여성을 동경하고 선호한다고 하는것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