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세계

레오나드로다빈치 - 영혼을 읽을 수 있는 초상화

#경린 2016. 8. 7. 17:18

 

Mona Lisa (La Gioconda)


<모나 리자>

유채패널화. 77×53cm. 1503~1506 . 루브르미술관 드농관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The Lives of the Most Emin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이라는 책을 통해 당시의 기라성 같은

미술가들의 삶과 업적을 기록했다. 그는 〈모나리자〉가 피렌체의 상인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를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라 조콘다〉라고도 불린다.)

 

바사리가 말하는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는 비단 사업으로 큰돈을 번 홀아비로,

열여섯 살의 엘리사베타(줄임말로 ‘리자’라고 부른다. ‘모나’는 결혼한

여자에 대한 존칭어 ‘부인’에 해당한다.)를 아내로 맞은 뒤,기쁨에 못 이겨

엄청 비싼 값을 치르고 레오나르도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모나리자〉가 ‘라 조콘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625년,

퐁텐블로에서 그림을 직접 본 고고학자 카시아노 달 포초가 바사리의

언급에 힘입어 그렇게 부른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그녀가 조콘도의 부인이 아니라는 의혹도 만만치 않다.

1517년, 당시 클루 성에 있던 레오나르도를 만난 한 추기경은,

그곳에서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자〉, 그리고 〈세례 요한(바쿠스)〉과

함께 메디치 가문의 남자가 주문한 피렌체의 어느 부인의 초상화를 보았다고 전한다.

따라서 그녀는 메디치 가문과 관계된 어느 여인이라는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주장도 온전하게 받아들이긴 힘들다.  

기법 면에서 이 그림이 위대한 것은 첫째, 얼굴은 정면에 가깝지만

몸을 살짝 돌려 한층 더 자연스러운 자세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딱딱하기 그지없는 한국형 졸업사진은 정면 일색이었지만,

서양인들의 증명사진은 〈모나리자〉의 자세를 취한 것이 더 많다.

몸을 4분의 1만 틀어도 자연스러움의 차이는 확연히 커진다.

 

둘째, 레오나르도는 윤곽선을 흐리게 하는 기법으로 인물의 표정과

외관을 자연스럽게 잡아냈다. 눈과 코, 그리고 입술 등이 얼굴의

피부와 닿는 부분을 어느 순간 뭉개듯 흐릿하게 처리하는

기법 덕분에 인물은 한층 자연스럽고도 신비롭게 느껴진다.

 

셋째, 그가 구사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다. 공기원근법이라 하여

관람자 혹은 화가와 가까운 곳의 사물들은 그 색이 짙고 윤곽이 선명하지만,

멀어질수록 옅어지고 흐릿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레오나르도가 찾아낸 것이다.

이는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단순한 선원근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발견이자 발명인 셈이다.

여인의 뒤로 펼쳐진 풍경의 아스라함이 바로 이 스푸마토 기법에 따른 것이다.

 

이후 많은 화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혁신을 좇았다.

덕분에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모나리자〉가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지만,

당시의 눈으로 보면 놀라울 만큼 사실적인 미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옮겨온 글

 

'모나리자'가 아니고 '모나 리자'였네...ㅎㅎ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부터 눈썹이 없었다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며 그것은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 이마를 밀거나 눈썹을 뽑아버리는 일이 유행했기 때문이란다.

다빈치 초상화들 속 여인들이 한결같이 이마가 훤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보는 사람에게 신비성을 느끼게 하는 '모나리자의 미소'는

다빈치의 인간에 대한 오묘한 감정과 관능의 표현으로

많은 풍설과 함께‘모나리자의 수수께끼’로서 오늘날도

적지 않은 문학적 관심거리이며, 그림의 역사적 경로에도

불분명한 점이 많아 모나리자에 대한 신비성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루브르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라 그런지

이 그림만큼 친근감을 주면서 많은 이슈를 동반하는 작품도 드물지 않을까싶다.

 

Portrait of Cecilia Gallerani (Lady with an Ermine)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나무 판넬에 유화 . 1490년

54*39cm . 바벨성 차르토르스키 미술관

1489년에서 1490년 사이에 레오나드로다빈치가 작업한 그림이다.

그림의 모델은 밀라노 공작인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애인인

체칠리아 갈레라니이다. 담비는 진창에 자신의 흰 털을 더럽히기보다는

잡혀서 죽는 것을 선택한다는 당시 사람들의 믿음에 따라,

담비는 전통적으로 순수함과 청빈함을 상징하며, 이는 다빈치의

<흰 담비의 우의화>라는 드로잉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품에 나오는 담비는 작품의 모델인 체칠리아 갈레라니와

공작인 루도비코를 상징한다.

갈레라니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담비를 나타내는 갈레를 떠오르게

하듯이 담비는 곧 갈레라니의 분신이며, 그녀의 순결성을 나타낸다.

또한 갈레라니의 연인인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가 1488년 나폴리의

국왕으로부터 수여 받은 기사 작위의 상징이 흰 담비로,

이 담비는 루도비코를 상징하기도 한다.

 

- 다음 백과사전에 옮겨 온 글

 

<흰 쪽제비를 안은 여인> 체칠리아 갈레라니를 그린 초상화는

다빈치 노년의 명작 <모나리자>에 뒤져 그만큼 큰 유명세를

타진 못했지만 다빈치 특유의 신비감과 묘한 심리적 공간감이

뛰어나고, 손을 매우 섬세하고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빈치는 손톱의 윤곽선, 손가락 관절의 주름, 구부러진 손가락

힘줄의 수축까지 그려내었다.

다빈치는 평소 자신의 일기장에 사람과 동물의 초상드로잉을

연습했다고 한다. 저 섬세함은 역시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귀족 태생의 애첩 '체칠리아 갈레라니'는 재능과 미모가 뛰어난

여인으로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에서도 그녀의 미모가 나타나 있다.

젊고 아름다운 17세 여인의 머리카락은 윤기가 있고

입모양새며 단정하면서도 단아한 인상을 주는 것이 여성의 단아한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하나보다.

 

Portrait of Ginevra de' Benci


<네브라 데 벤치>

1477년 . 목판에 유채 . 38.8*36.7 .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앞뒤, 양면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앞면은 지네브라의 초상이

차지하고 있고 지네브라의 머리 위쪽부터 뒷면은 화관처럼

노간주나무 가지를 드리워져 있다. 또한 노간주나무 가지와 이를 둘러싼

월계수와 종려나무 가지가 아름다운 화관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지네브라는 미모와 지성으로 당시 피렌체에서 유명했던 여성으로,

다빈치는 작품의 식물 이미지를 통해 미와 덕의 관계를

보여주고 지네브라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가져 옴

 

22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첫번째 초상화 작품

'지네브라 데 벤치'는 그녀의 결혼을 앞 두고 그린 초상화이다.

그 당시에는 주로 사용하지 않던 여인이 실외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멀리 있는 배경까지도 아주 세밀하게 묘사 되어 있다.

 

'지네브라 데 벤치' 그림 뒤에는 또하나의 그림이 있다.

야자수와 월계수가 묘사 되어 있고 두 나무의 중간에 지네브라를

상징하는 향나무가 들어서 있고, 글자가 새겨진 작은 띠가 이어져

"아름다움이 덕성을 장식 해 준다"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위 그림은 아랫부분이 잘려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그것은 인체의 비율과 손이 말하는 표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빈치인 만큼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이나 '모나리자'처럼

허리와 손도 그렸을 터인데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셔널 갤러리의 학생용 교육자료에서는 이 그림 아래 부분을

빈칸으로 여분을 두고 학생들의 상상력으로 채워보게 한단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고,

과연 다빈치는 어떤 표정의 손을 그렸을지 사뭇 궁금하다.

 

그림을 가만 보고 있으면 절대 결혼을 앞 둔 신부 같지가 않다.

뛰어난 미모와 직접 시를 쓸 정도로 교양이 풍부하였던

꽃같은 17살의 신부의 얼굴이 왜 이렇게 차가울까?

열일곱살이 아니라 오십은 넘어 보이는 인생의 근심까지 느껴진다.

 

다른 그림에서 나타나는 미소가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아버질뻘의 부자남자와 정략결혼을

해야했던 지네브라의 실연의 눈빛과 침묵의 맘까지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한 대단함과 대담함이 돋보인다.

그래서 다빈치의 초상화를 '영혼을 읽을 수 있는 초상화'고 하는 듯하다.

 

 

La Belle Ferroniere

 

<페로니에르를 한 아름다운 여인>

목판에 유채 . 63*45cm . 1495년경 .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

이 그림이 ‘라 벨 페로니에르(La belle ferronnière)’,

즉 ‘페로니에르를 한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불린 것은

18세기부터였다. 프랑스 여인들은 그림 속 여인의 이마에 달린

예쁜 철 장신구를 페로니에르라고 부른다.

그러나 원래 페로니에르는 ‘페론 씨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림 속 여자가 루도비코 일 모로의 정부가 아니라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의 정부로, 철물 장식업자인

'페론 씨의’ 아내일 거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면, 페로니에르(ferronnière)는

첫째, 여자의 이마에 두르는 금줄 달린 보석 장신구,

둘째, 철물 제작[판매]업자의 아내라고 나와 있다.

암흑 같은 검은 배경은 관람자의 시선을 오로지

이 아름다운 여인에게만 집중하도록 한다.

정면이 아니라 몸을 살짝 비틀고 있어서 여인의 존재가 더욱 자연스럽다.

게다가 하단에 그려 넣은 창틀 때문에 그림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치 실제로 어딘가에서 우연히 창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는 듯한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엇나간 듯 살짝 치켜뜬 시선은 여인의 성격이

그다지 호락호락할 것 같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생긴 것과 성격은 가끔 아주 다르다지만 말이다.

지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눈매, 날렵한 코, 단호하게 다문 입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얼굴의 윤곽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완벽하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가져온 글

 

위 세 초상화에 대한 설명을 읽고 '라 벨 페로니에르'를 보면

'어 이 초상화에도 손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손 대신 그림 아래쪽을 가로질러 틀을 그렸다.

창틀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구도적으로도 그렇고 쌩뚱스럽다.

그래서인지 일부 전문가들은 '라 벨 페로니에르'를 레오나르도가 그리기 시작했던 작품을 제자들이 한장의

그림으로 팔기 위해서 손쉽게 정리하였던 경향의 그림으로 보기도 하여

다빈치가 그린 여성모델의 유채초상화는 세 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나리자>와 더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하나의 걸작이라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측에서 본다면 손사래를 칠 일이다.^^

창틀이다 하고 보면 여인이 창너머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쪽으로 비스듬히 앉아서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곡선은

모나리자와도 같은 구도이다.

근데 무표정에 눈매가 예사롭지는 않은 것이 그림을 보고 있는

나의 눈에도 힘이 들어가는 듯하다. 슬며시 미소짓게 하는 모나리자의

온화한 미소와는 완전 대조적이다.

 

앞쪽에 쌩뚱스러운 창틀이 아니고 아름다운 손이 그려졌더라면

느낌이 달랐을까?

아니면......

신경질적인 손의 표현이 애매하여 창틀로 마무리하였나...

하는 그야말로 쌩뚱맞은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