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세계

푸코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경린 2018. 7. 21. 23:45


피카소의 '시녀들'

 

프라도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상당히 큰 사이즈의 그림이고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그림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이 그림을, 그때는 사실 별 생각없이 보았던 그림을

내가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셸 푸코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이다.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이라는 책의 처음 많은 양의 페이지를 이 그림에 대한

해석으로 할애를 하였다고 한다. 책에 짧게 소개 된 글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어

여기저기 찾아 보았다. 그런데 푸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해

언급 한 이런저런 내용들에 대한 글들을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가 쉽게 되지 않았다.

좀 쉽게 설명 해 주면 좋으련만...철학적인 설명은 정말 난해하기 짝이 없다.

오해하기 십상인 것이다. 논점이 뭔지? 기초가 없다보니....원

 

약45분짜리 동영상 3개와 여기저기 수많은 글들을 읽고 복사하고 밑줄 긋고 하다보니

쪼금 알것도 같고 아직도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를 것도 같다.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부족해서 찾아 가는 것이니까 

계속 찾아가 보는 맘으로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1656, 캔버스에 유채, 318 X 276


벨라스케스는 그림을 그릴 때 작품의 소재를 선택하는 방식이 남달랐으며

그림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도 여러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아 하나의 그림에

여러 제목이 붙여져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림들이 꽤 있다.

'시녀들' 역시 그러한 작품들 중 하나로 처음에는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라고 불렸다.

그림 속 거대한 캔버스 앞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벨라스케스이기 때문이다.

17세기 왕실소장 미술작품목록에는 '시녀들 및 여자난쟁이와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로 적혀있다.

그 다음 '펠리페4세의 가족초상화'로 불리다 19세기 프라도 미술관 작품집에서 '시녀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빛과 어둠의 대비에 능한 벨라스케스의 그림답게 창문을 통해 햇빛이 스며 들어 방을 비추며

치밀한 원근법과 세밀한 묘사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해석을 남기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그림 속에는 11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벨라스케스는 사실화로 디테일하게 그림을 그렸고 그림속 인물들은 실존인물들이다.

그림 중앙에는 5세의 어린 공주와 시녀 두 명이 있고

오른편 아래에는 두 난쟁이가 있다. 그 시대의 왕실초상화에서는 왕족들의 고귀함과 품위 있는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나타내고자 난쟁이들을 종종 등장시키기도 하였다 한다.

화면의 왼쪽에는 거대한 캔버스와 그 옆에 화가가 서 있다.

공주의 뒤쪽으로 보이는 두명의 궁인은 왕비의 시종으로 추정되며

그림의 후경 열려진 문으로 왕비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들어서며 방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문 바로 왼쪽 거울에는 펠리페 4세 부부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이들 중 이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림의 후경에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문 옆에 거울을 통해 캔버스 너머에 또다른 공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캔버스를 중심으로 캔버스 앞의 공간과 빛이 비치는 뒤의 공간으로 공간이 확장되면서

그림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으며 주인공이 달라질 수 있다.

화가의 지위가 낮았던 유럽사회에서 왕의 가족들이 화가의 방(벨라스케스의 방은 펠리페4세가 죽은 아들의

방을 화실로 내어 주었다. 왕이 얼마나 벨라스케스를 총애하였는 지 알 수 있다)을 직접 방문한 것을 그려

왕과의 친밀함을 부각시키며 화가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화가로서의 자신감과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있다.

벨라스케스의 가슴에 그려진 십자가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귀족표시문양이며

그림을 완성하고 2년 뒤 그가 죽고 난 다음 펠리페4세에 의해 그려 넗어졌다.

펠리페4세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기 때문에 이 문양은 펠리페4세가 직접 그렸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화가는 천장까지 닿을 듯한 거대한 캔버스에 국왕부부를 그리고 있다. 즉 국왕부부는

그림의 모델로 이 그림의 바깥인 관람자측에 서 있어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국왕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방에 공주가 시녀들을 데리고 놀러 온 장면을 그렸다고도 해석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관람자측의 국왕부부 뒤쪽에도 거울이 있어 그 거울에 비친 공주와 하인들, 그리고

국왕부부의 초상화를 그리는 자신의 모습까지 그린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반면 국왕부부는

실제 그 자리에 없고 거울에 비친 것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라는 연구도 있다.

이렇다보니 다양한 제목이 붙여졌으며 많은 화가들이 패러디하기도 하였다.

피카소가 그 대표적 화가로 '시녀들'을 연작으로 작업하기도 하였다.



미셸 푸코는 문화인류학적으로 보편에 대해 사유하는 철학자이다.

당연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인간언어의 본질로서

당연한 것은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며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는 무의식적인 공식인 것으로 본다.

보편성은 특정시대 특정인들에 의해 구성된 것에 불과 한 것으로 각 사회마다 각 시대마다 다 다르며

보편성을 고정시켜 버리면 변화시키려는 것을 막아버리므로, 변화하려면 보편성을 파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푸코는 인간과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이 선포한, 인간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진리 선언이 얼마나 부당하고 오류에 찬 것인가를 정밀하게 파헤친 그의 저서

'말과 사물(부재:인간과학에 대한 고고학)'의 첫장에 스페인 바로크 시대의

 대표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18페이지에 걸쳐 해석 해 놓았다.


벨라스케스는 이 작품 하나의 화면에 모델, 화가, 관객까지 다 담아내려했다.

하지만 누가 주인공이고 모델인지 알 수가 없다.

푸코는 이 그림에서 '인간 주체의 부재'를 보았다.

화면 속 9명의 인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왕과 왕비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로 등장하면서 화면속에

그려진 인물들 중 가장 작고 희미하게 나타난다.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의 자리에 왕과 왕비를

자리시킴으로서 거울속에서도 관람자의 자리에서도 관객은 배제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또한 화가로서 드러나는 것은 그리기를 그만 두었을 때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왼쪽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즉 화가로서의 주체를

지워야만 자신의 그림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림 밖의 관찰자들인 공주와 시녀들 역시 그림에 재현되면서 관찰자의 자리에서는 사라진다.


벨라스케스는 거울의 기묘한 역할을 통해 모든 시선을 벗어나 그 바깥에 머무는 것까지 나타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이중적인 연결이다.

화가는 화폭에 모든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주체는 사라진다.

사라져야만이 나타내고자 한 것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거울 옆 현관에 막 발을 들여 놓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뒤를 이어 또 누가 들어올 지도 모른다.

여기서 푸코는 모든 것을 나타내고자 했던 고전시대에도 주체의 생략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즉 정신적인 것 추상적인 형식들 마저 나타낸다.

하지만 나타내고자하는 주체는 사라진다.


인간과학은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보편적인 학문이 아니라 19세기에 형성된 근대적

에피스테메의 손산에 불과하다. 적어도 르네상스와 고전 시대에 인간은 독자적이고 고유한 분석의

대상이 아니었고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사성 체계의 부분으로, 고전시대에는

분류와 질서 체계의 부분으로만 존재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을 지식의 중심으로 설정하는

근대적 에피스테메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학적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고는 19세기에 형성된 근대적 에피스테메(특정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된 인식의 테두리)의 소산인 것으로

근대적 에피스테메가 다른 에피스테메로 대체되는 변환이 도래하게 되면

근대 인간과학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정신분석학, 문화인류학, 구조언어학 등의 학문들은 인간의 의식적 행위 너머에 존재하

무의식적 '구조'를 공통적으로 다루는 것들로, 곧 주체적 의식의 소유자로서

인간의 존재를 부정했다.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중에서 - 하상복


16세기 유럽 문화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와 지리적으로 제한 된 범위로 국한한다고 해도

인간이 최근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물과 사물의 질서에 관한 지식, 동일성, 차이, 특성, 등가성, 낱말에 관한 지식에

영향을 미친 모든 변화들, 즉 동일자의 심청적 역사에 관한 모든 국면들 중에서

150년 전에 시작되어 현재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국면만이 인간의 형상을 출현하게 했다.


인간은 우리의 고고학적 사유가 쉽게 밝힐 수 있는 최근의 발명품이다.

아마도 고고학은 다가올 인간의 종말에 대해서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말과 사물-부재:인간과학에 대한 고고학 / 미셸 푸코>

 


 피카소는 벨라스케스 즉 화가를 크게 부각 시키고 있다.

나의 생각도 시선도 그러하다.

미셸푸코의 시녀들에 대한 해석은 너무 난해하고 자기 논리적이지만

그러한 생각을 해 내었다는 것에서 자기답게 살고자 한 그의 사유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