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

#경린 2015. 4. 29. 17:39

 

박수근그림 '아기업은 소녀'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물에 빠진 염소를 건져 업고 '노파가' 가고 있다. 놀랐을 염소를 달래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 자장가까지 흥얼거"리며, 등은 흠뻑 젖은 채. 눈물겨운 풍경이다. 업는다는 것은 따뜻하고 슬픈 일. 그것은 무방비의 내 뒤쪽을 다 허락하는 일이며 믿고 다 내준다는 뜻이다. 타자의 온무게를 지고 그의 다리가 되어 대신 걸어주는 일이다. 또한 그의 가슴과 아랫도리를, 숨결과 감춰진 울음을 내 등으로 읽고 감당하는 일, 그리하여 마주 안는 것보다 더 깊고 눈물겹고 한 몸이 되는 일이다. '업어주기'에 대한 2, 3연의 통찰 또한 따뜻하다. 어찌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지 않으랴. 늙은 할매와 어린 염소의 업고 업힘, 이 따뜻한 비애의 풍경에 축복 있기를! (한 가지, 시인은 왜 '노파'라틑 문어투 번역투의 어휘를 택했을까. 감상적이 될까 두려워한 것일까.)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중에서

 



누군가에게 업혀 본다는 것, 업어 준다는 것 대부분의 그 경험은 과거의 기억에서 오지 않을까싶다. 부모가 자식을 업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업히거나 다 큰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업힌다는 것은 몸이 아프다거나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을 때이니 쉬이 업어주지도 업어달라고도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업힌다는 것, 의지한다는 것 아니면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 등이나 품, 어깨를 내어준다는 것은 서로의 심장소리를 가까이 느끼는 것 따뜻함을 나누며 서로에게 스며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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