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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하는 여자 - 김 숨

#경린 2016. 2. 20. 22:34

 

맵쌀 같은 흰색에는 옅은 밤빛이, 갓 지은 백미 같은 흰색에는 초겨울 새벽녘의 푸른빛이, 배꽃 같은 흰색에는 노란빛이 미미하게 감도는 연둣빛이, 달걀 껍데기 같은 흰색에는 탁하고 흐린 분홍빛이, 두부 같은 흰색에는 살굿빛에 가까운 노란빛이 감돌았다. 흰색을 어쩜 저리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다른 흰색은 감이 잡히는데 초겨울 새벽녘의 푸른빛 같은 갓 지은 백미의 흰색은 어떤 색일까?? 갓 지은 백미의 빠지르르 윤기나는 푸른빛일까 꼼꼼하면서도 섬세한 작가의 표현능력에 탄복하면서 비유 속으로 스며들 듯 빠져들며 책장을 넘겼다.

 

양단이 띠는 자색이 밭에서 금방 따 매끈한 윤기가 감도는 가짓빛이라면, 무명이 띠는 자색은 솥에서 한소끔 쪄 윤기가 걷힌 가짓빛이었다. 명주가 띠는 자색은 갓 피어난 가지꽃 색이지만, 광목이 띠는 자색은 시들해진 가지꽃 색이었다. 하! 가지의 빛이 저리도 다양하였던가 무명, 명주, 양단, 광목 등 다양한 직물들의 질감을 어쩜 가지라는 하나의 것으로 다 표현 해 내다니 그것도 공감 가득히

 

서쪽 방 문지방과 쪽마루에 짓이긴 금국화처럼 널려 있던 햇빛은 어느새 까맣게 짓물렀다. 저녁 밥상에 올라온 국과 반찬들은 어머니가 누비옷을 짓는데 쓰는 천들과 묘하게 닮았다. 들기름에 볶다가 쌀뜨물을 붓고 끓인 무국은 명주를, 된장에 무친 무청시래기나물은 광목을, 데쳐 조선간장에 무친 배추는 무명을 닮았다. 갓 지은 쌀밥에 미리 삶아 식혀둔 보리를 섞은 밥은 광목을. 쑥과 밀가루를 버무려 찌는 쑥버무리는 무명천이었다. 감말랭이설기떡과 늙은 호박설기떡은 국화나 구름 문양 양단이었다. 무를 종이처럼 얇게 썰어 쌀가루와 섞어 찌는 설기떡은 명주였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낯선음식들이고 옷감들이라 어쩜 그들에게는 글을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갸우뚱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음식들이고 천들이었던지라 음식들과 옷감의 느낌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고 작가는 또 어떤 표현들을 해낼까 궁금하였다.

 

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무명 실타래처럼 피어오르고, 다리미에 눌은 자국 같은 어스름이 내릴 즈음 마을 초입의 미루나무는 무명흙먼지 옷감으로 지은 적삼을 여러 장 겹겹이 껴입고 서 있었다. 여름날 광복구름이 하늘을 덮으면 후덥지근했다. 옥양목 구름이 떠다니는 날은 동풍이 불었다. 우물집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바람바늘이었고, 햇살은 햇살실이었다. 햇살실에는 명주햇살실과 무명햇살실과 초를 먹여 빳빳해진 명주 햇살실이었다. 바람바늘이 귀는 누비 바늘의 귀보다 작았다. 동틀 즈음에야 바람 바늘의 귀에 명주햇살실이 꿰어졌다. 바람바늘이 부드럽게 감치고 지나간 자리마다 바늘땀이 떠졋다. 파리가 똥 싸듯 바늘땀이 떠졌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할 즈음이면 바람바늘의 귀에는 초를 먹인 명주햇살실이 꿰어졌다. 정오 즈음에는 무명햇살실로 바뀌어 꿰어졌다. 자연과 바느질을 연결 한 표현력도 감탄스럽고 황홀하지 않은가

 

주야장천 땀구멍 같은 바늘땀만 반복해서 떠 넣는 것 같지만, 한 벌의 누비옷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쳤다. 대구까지 나가 옷감을 떼어오고, 그 옷감에 감이나 쪽이나 오배자 같은 물을 들이고, 다듬이질을 하고, 올을 튕겨 누빌 선을 표시하고, 치수를 재 도안을 뜨고, 마름질을 하고, 실에 초를 입히고, 앞뒤를 맞춘 천과 천 사이에 목화솜이나 누에고치나 종이 같은 충전재를 넣고…… 누비질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는 듬성듬성 바늘땀을 떠 충전재가 안에서 뭉치거나 밀리지 않도록 고정시켰다. 어머니는 그것을 시침질이라고 했는데, 옷이 완성되면 전부 풀어버렸다. 우리지역에는 통영누비가 아주 유명하여 아이를 키울 때 누비포대기를 사용하였고 누비지갑과 필통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요즘 사용하는 누비는 모두 재봉틀로 작업한 것들이다. 과연 소설속의 누비처럼 손누비가 아직도 있을까 모르겠다. 손누비의 과정이 저토록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허균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받은 소설가 김숨(41)의 장편소설 '바느질 하는 여자'는 바느질이 인생이고, 인생이 곧 바느질인 세 여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누비 바느질만으로 인생을, 두 딸을 키우며 손가락이 생강처럼 비틀어지고, 눈이 멀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생의 마지막을 맞는 한 여인의 일대기를 담은 이 소설에 바느질의 세세한 과정과, 바느질로 만든 갖가지 옷의 의미, 바느질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바느질의 모든 것'을 담아 내려 했고 바늘질 하는 여자들과 바느질 집을 찾아오는 다양한 여인네들의 삶을 통해 이 시대 여인네들의 애환과 풍속을 그리고 있다. 또한 집요하게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모습, 그것을 통해 궁극에 달하는 모습으로 '예술'을 하는 이들의 지독한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써냈다. 글을 읽다보면 소설가인 김숨 자신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나의 옷을 완성하기 위해 몇만번의 바늘땀을 떠야하는 누비질 누비 바늘땀 만큼이나 촘촘히 묘사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주인공 수덕의 귀기 만큼이나 김 숨님의 귀기도 느껴졌던 소설 단어를 고르느라 문장을 벼르느라 얼마나 힘들고 고뇌했을까 이리 아름다운 우리의 작업과 말과 자연을 살리느라 또한 얼마나 많은 발품과 시간을 들였을까 그 노고에 고개 절로 숙여지고 감탄스러웠다. 한편으론 소설 속에 나오는 시대적 배경이나 년도를 보아 주인공들의 나이들을 맞추어보면 주인공 딸들의 나이가 나와 비슷할 듯한데 사실 소설속의 배경들이 나는 많이 낯설었다. 소설초입에는 배경이 조선후기인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바느질만큼이나 꼼꼼하고 섬세한 표현에 입이 절로 벌어지고 감탄스러웠지만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다 넘어가도록 앞과 뒤가 별로 다르지 않은 반복되는 듯한 표현과 비유의 연속이라 따분한 감도 있었다. 중편 정도였더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