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생가

#경린 2016. 5. 20. 17:37


가까이 살면서도 자주 지나치면서도 찾아가보지 못했던 곳

봄빛 고운 날 다녀왔습니다.



관광버스도 들어오고 찾는 이들이 아주아주 많았습니다.



봉하마을 주차장에서 참배묘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초가집으로 노무현전대통령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옛집을 그대로 재현한 노무현대통령생가

태어나셔서 8세까지 생활했던 곳이라합니다.

사법고시 합격 후 부산으로 떠나기 전까지

마을 안에서 3번 이사를 하였다고 하고요.



복원될 생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노무현전대통령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생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를 희망했다고 합니다.

 보여주는 집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의 향기가 나는 집을 원하셨던 듯



생가 근처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이나 생전의 모습과 생활 들이

일기처럼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사용하셨던 물건이나 자전거 등 다양한 소품들도 전시 해 놓았고

설명도 되어 있어 참 많은 일들을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추모의 노란 종이를 모아모아......





생가를 방문한 후 참배묘역으로 향했습니다.

슬픈 추억을 간직한 사자바위을 배경으로 한 꽤 넓은 광장

대통령의 묘역이라고 지기가 설명 해 주었습니다.




대통령 묘역은 너럭바위와 국민참여박석

그리고 자연박석과 수로, 수반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묘역의 특징 중 하나가 묘역의 바닥에 국민들의

마음을 담은 박석을 깔았다는 것입니다.

설계를 맡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설명을 빌면,

박석(薄石, 博石)이란 얇은 돌 또는 넓적한 돌이라는 뜻으로,

전통 건축물에 쓰는 바닥 포장돌입니다.


작은 박석을 자연스럽게 마치 조각보처럼 이어 붙이면

아름다운 무늬가 됩니다. ‘아주작은비석건립위원회’는

대통령 묘역 전체에 작은 박석들을 바닥 돌로 설치하면서

그 박석에 추모기간에 온 국민이 보여주었던 존경과 애도,

사모와 사랑의 글을 새겨 넣었습니다. 국민참여박석 하나하나에

새겨진 국민들의 메시지가 바로 비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석은 63세를 일기로 서거하신 대통령을 기리는 의미에서 63개 구역으로

나누어 설치됐으며, 모두 1만5천개로 신청자의 기부를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보통 묘역에서 볼 수 있는 봉분은 없고,

비석과 비문이 노무현대통령을 추억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께서 평소에 "화장하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지를 주셨고
화장한 유골을 안장하되 봉분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족들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비석을 세우지 않고 남방식 고인돌의 형상을 한  너럭바위로

대신하고, 거기에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지관스님의 글씨로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글자만 새겼습니다.



묘역옆으로 아픔을 간직한 부엉이 바위쪽으로는 시민들이

휴식하고 갈 수 있는 공간이 공원처럼 마련되어 있습니다.



부엉이 바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도 잘 정비를 해 둔듯합니다.

해질녘이라 부엉이 바위는 다음을 기약하였습니다.



공원뒤로는 이런 못도 있었습니다.


둘러 보는내내 왠지 숙연해지고 짠 한 맘 가득.....





'우리 봉하마을은 이렇게이렇게 깨끗하다..좋다..놀러오시라'

'사자머리에서 보면 우리 봉하마을이 한 눈에 다 보인다. 구경오시라'

'내가 가이드 해 줄테니 우리집에 와서 날 불러라.

같이 구경하자.....살기좋은 봉하마을...'


그리말씀하셨던 그 님은 가고 없지만 그 님 만나듯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