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지리산 청학동

#경린 2016. 5. 27. 21:12




청학동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전해 오던 도인들의 이상향을 말한다.

전국의 여러 명산에는 청학동의 전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학동의 위치는 지리산에 있으며

예로부터 천석(샘과 돌)아름답고 청학이 서식하는

승경(勝景)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청학동은 지리산 청학동의 유래가

존재해 오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지리산 삼신봉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인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며 도인촌으로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종교취락의 성격을 지닌다.

청학동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들의 종교적 표상에서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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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 주민들은 모두 강대성이 창시한 유불선갱정유도교라는

신흥종교를 믿고 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 이곳에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하였다.


갱정유도는 단군계 신흥종교로 일명 일심교라고도 한다.

갱정유도의 사회적 표상은 집단생활을한다는 것 이외에도

신도는 한복에 푸른조끼를 입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늘어뜨린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면 옛선비들처럼 상투를 틀고 큰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서당에 보낸다.

특히 현대문명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이 갱정유도의 큰 특징이다.



지리산 청학동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이인로의 '파한집'으로

노인의 구전에 근거한 것이었다.


청학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는 지원 병사들이 청학동에 들어와 거주하였고,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100가구 정도가 살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감시를 피해 사람들이 이주해오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거주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청학동에 살던 주민들이 퇴거당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외부와 교류를 차단한 채,

종교 신봉자들이 모여 독특한 생활방식을 유지해 오고 있다.


가옥은 모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초가형태를 띠고 있으나,

각종 문화시설, 예컨데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 세탁기 등이 갖추어져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옮겨온 글 -



천제를 올리는 천제당 내부모습



깨알 같은 글씨도 잘 읽으셨던 93세의 어르신과 함께



도인의 이상향이었던 청학동

외부와의 소통이 활발 해 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은 듯하였지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청학동하면 그저 우리의 옛것을 지키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또는 학생들이 수련회 장소로 많이 가는 곳 정도로만 알았다가

이번 여행길에 그들만의 다른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의 발길도 뜸 한 듯하고 조용한 마을에

돌탑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