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학교는 왜 가야 하는가?

#경린 2020. 8. 30. 13:27

아테네 학당 / 라파엘로

 

코로나19가 2차로 재확산되자 학교 개학을 두고 고심을 하고 있다. 이미 개학을 한 학교에서도 앞으로 학교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은 마찬가지이다. 학습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병행하며 운영 방법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홀수 학년과 짝수 학년이 주를 번갈아 가며 등원하기, 홀수반 짝수반으로 나누어 번갈아 등원하기, 한 반에서도 짝수번호 홀수번호 나누어서 등원하는 등 학년이 어릴수록 그 쪼갬의 방식이 작았다. 왜 학년이 어릴수록 그 쪼갬의 방식이 더 자잘해지고 학교가는 횟수가 더 적은 것일까? 학교의 역할은 무엇이며 왜 가는 곳일까?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일까?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등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4월 뒤늦은 개학을 하면서 고3과 중3을 제일 먼저 오프라인 등교 대상 학년으로 잡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3은 고등학교 진학을 고3은 대학 진학을 당면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거기에는 시험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입시가 중요한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 또한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보았다. 2차 재확산으로 2학기 개학에서도 제일 먼저 고려 대상이 되는 학년은 역시 고3이다. 고3은 매일 무조건 전원 동시에 등원하는 것이 원칙이라도 되는 듯하다. 심지어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제일 큰 피해자는 고3이라고 한다. 그것 역시 답은 한가지로, 수능을 코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수능을 한 학기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아마 이것도 고3을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같은 상황에서 프랑스는 유치원 및 초등 저학년과 맞벌이 자녀 및 의료진들의 자녀들을 제일 먼저 오프라인 등교 대상으로 잡고 등교 수업을 실행하였다. 돌봄을 최우선으로 보았고 그것이 필요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배려하기 위함이 바로 엿보이는 결정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저소득층 자녀에게 통신비나 통신기기를 지원 해주고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필요하다면 신청하라는 식이었다. 필요하다면 신청하라는 것은 부모가 학교에 부탁을 해야 하는 느낌이 든다. 반면 정부에서 먼저 챙기는 것은 당연한 배려를 받는 느낌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교육이 상부에서 내려오는 명령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부모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돌봄 교실을 신청하기 꺼려 한다. 괜히 내 아이가 학교 가서 눈치 받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쳤던 중1 학생 정민이는 코로나로 인해 중학교 개학이 늦춰지면서 학원을 오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면 영어와 수학이 어려워지니 형편이 어려워도 공부를 좀 시켜야겠다고 학원을 보낸 지 두어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기였다. 학습 수준이 또래 친구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 내가 따로 개별 지도를 해 주고 있는 참이기도 했다. 학습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데도 학원을 오지 않는 이유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어린 동생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민이네는 어머니가 베트남에서 온 다문화 가정이다. 어머니 아버지가 공장에 나가 일을 하시는 맞벌이 가정으로 동생을 돌 볼 사람도 정민이 학습을 도울 사람도 정민이 밖에 없었다.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가정의 자녀는 신청을 받아 돌봄이 가능한 시기에도 정민이는 학원을 오지 못했다. 계속 동생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돌봄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 일 것이다. 돌봄을 신청해서 아이를 맡기면 눈치가 보인다거나,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면 정부지원금이 가정으로 배당된다거나,  중1은 학교 시험이 없으니 정민이는 중2부터 보내겠다는 등등. 설상 정민이 본인은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데 몰라서 못하고 이러다 어쩌나 불안하다며 울먹이는 겨우 중1이었다.

 

우리 때는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고 개근상을 아주 높이 쳐 주었다. 학교는 왜 가야 하기에 그렇게 개근상을 중히 여겼을까? 개근상에는 근면 성실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음이고 집단을 위해 세대를 이어 전수할 수 있는 학업을 열심히 하였다고 인정하는 징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는 적극적 가르침과 배움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은 자기 주도 학습이 유행이고 대입 수시전형에서도 자기 주도 학습을 중히 여기기도 한다. 물론 자기 주도 학습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자기 주도 학습만 고집한다면 자기 고립 학습이 될 수 있다. 학교는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이기도 하고 어깨너머 보고 배우는 집단학습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학교는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배우는 곳으로, 또래나 동료학습의 효과가 큰 곳이다. 암기하는 뇌 즉 배우는 뇌와 가르치는 뇌는 다르다고 한다. 암기하는 뇌는 학습과 관련이 있다면 가르치는 뇌는 사회성과 관련이 있으며 공감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나름의 노하우를 넣어 열심히 핏대까지 올려 가르칠 때 보다 또래가 또래의 눈높이와 언어로 가르쳤을 때 더 큰 효과를 내는 경우를 많이 보기도 했다.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다. 또한 또래집단은 엄마와 아빠보다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이 많이 나와 있으며, 사이코패스의 경우 친구와의 놀이가 부족했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고도 한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홈스쿨링을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우정과 협력을 배우고 관계와 공감 능력을 배우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공감능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요구하는 부분이다.

 

일생에 있어 또래학습의 시기는 학교를 다니는 기간에 가장 많이 이루어진다. 무분별한 집단 모임, 이기적인 거짓말, 배려 없는 행동들은 공감능력 부족에서 오는 행동들이며 주로 어른들이 행하고 있다. 그로인해 우리 학생들은 한정되어 있는 또래 관계의 중요한 시기 1년을 날려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모, 학교가 가고 싶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어른들이 마스크를 안 써요. 우리 동네 누구누구가 마스크를 안 썼어요. 그래서 우리가 학교를 못 가요"라고 초딩 조카가 울먹였다. 학생들은 지금 학교가 너무 가고 싶다. 학생들은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데 어른들만 모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 하시는 분들은 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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