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이야기

한여름의 꽃 -배롱나무(목백일홍) / 목백일홍-도종환

#경린 2011. 7. 31. 21:02

 



창원에서는 배롱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요즘 어딜가도 배롱나무꽃을 쉽게 볼 수 있다. 가로수로 심어져 왠지 나무의 격이 좀은 떨어져 버린 듯도 한데....... 지금은 어린 나무여서 더욱 그러해보이지만 좀 더 세월이 지나면 창원시의 묵어가는 세월만큼 수령깊어져 멋있는 자태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배롱나무를 보면 항상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어린시절을 보내었던 외할머니 계신 곳의 절에는 아주 큰 배롱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그 절이 어느 절인지 까마득하고 그저 부산 어느 암자라는 정도 밖에는 모르겠는데 비 온 다음 날 붉은 울음을 마당 가득 토해 내고도 의연히 한여름의 태양과 맞서 꽃을 다시 피워내던 그 백일홍이 늘 기억 속에 피어 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많은 것들이 까마득한데 왜 인지는 모르지만.... 그 꽃분홍색 붉음만은 내 기억 속에 언제나, 어디서나, 어느때나 선명하게 살아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목백일홍이 피고지고 다시 피어 나는 즈음이면...너무나도 그리운 그리움이다. 아마도.... 할머니와 스님 외에는 아무도 없던 깊은 산 속의 절간에서 내가 간 첫 날 부터 돌아 올 때까지 한여름의 태양을 가려 주어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공기받기, 소꼽놀이를 하며 혼자서 중얼중얼 했던 꼬맹이의 말을 다 들어 주었던 친구였기 때문인 듯....

 



배롱나무 꽃은 부처꽃과(―科 Lythr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꽃이 오랫동안 피어있어서 백일홍나무라고도 한다. 자주색 꽃이 핀다하여 자미화(紫薇花), 줄기에 옴이 올랐다는 뜻으로 백양수(伯痒樹), 온 집안이 붉은 빛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여 만당홍(滿堂紅), 긁으면 나무 전체가 움직여서 간지럼을 타는 듯 하다하여 간질나무 혹은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옛날 어느 어촌에 목이 세 개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 매년 처녀 한명씩을 제물로 받아갔다. 그 해에 한 장사가 나타나서 제물로 선정된 처녀 대신 그녀의 옷으로 갈아 입고 제단에 앉아 있다가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로 이무기의 목 두 개를 베었다. 처녀는 기뻐하며 “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사오니 죽을 때까지 당신을 모시겠다.”고 하자 “아직은 이르오. 이무기의 남은 목 하나도 마저 베어야 하오. 내가 성공을 하면 흰 깃발을 달고 실패하면 붉 은 깃발을 달 것이니 그리 아시오.”하고 길을 떠났다. 처녀는 백일 간 기도를 드렸다. 백일 후 멀리 배가 오는 것을 보니 붉은 깃발이 걸려 오는 것을 보고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장사는 이무기가 죽을 때 뿜은 피가 깃발에 묻은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 후 처녀의 무덤에서는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백일 간 기도를 드린 정성의 꽃, 백일홍이다

 



여느꽃처럼 따뜻한 봄에 피는 것도 아니고 며칠 피었다 져 버리는 것도 아닌 것이 바람 한 점 없는 계절 한여름 강렬한 태양과 정면으로 맞서기라도 하듯 의연하게 피어나, 무려 100일 동안이나 지고 피고를 반복하는 꽃 열흘 붉은 꽃이 없다했는데... 물론 꽃 한 송이가 백일동안 피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나무에서 꽃이 피고 지고 조화롭게 되풀이 하며 백일동안 변함없이 피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렇게 찬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나무는 수많은 꽃송이들을 부여잡고 있다. 한여름 비가 온 다음 날이면 비를 머금고 분홍빛 붉은 꽃들이 바닥을 덮고 있다. 나무에 피었던 꽃이 땅으로 떨어져 다시 피어나 붉은 양탄자의 꽃무늬를 이룬다. 그 모습이 어찌그리도 애틋하였던지 내 기억 속 내내 나만의 이야기로 그려져 있다.

 



목백일홍 / 도종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