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함양 안국사 외할머니의 발자취 따라

#경린 2012. 10. 7. 18:23

 




올해는 당신손수 벌초를 하지 못하셔서 제대로 되었는지 궁금해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주말 가을 나들이를 나섰다. 할아버지산소 주변은 깨끗하게 잘 손질이 되어 있었지만 지난 태풍에 큰 나무들이 몇몇 쓰러져서 잘라 한 쪽에 둔 모습이 안타까웠다. 준비해간 코스모스와 풍접초 씨앗을 길가에 심고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산소앞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간단히 요기를 하고 근처에 있는 안국사로 향했다. 안국사는 오래전 외할머니께서 머무르셨던 산사이다.

 




안국사가는 길에 실상사 이정표가 보였다. 여기까지 온 길에 실상사를 들러보고 싶었지만 어른을 모시고 가는 길이고 10월의 여기저기 여러행사로 인해 고속도로 사정을 예상하기 힘든지라 다음을 기약하며 통과했다. 기후탓인지 추수를 아직 하지 않은 가을 들녘은 그야말로 황금물결이라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함양의 맑은 공기와 지리산자락을 낀 계곡 경치도 일품이었다. 지난 태풍에 계곡에서 흘러 내려온 돌들이 많은 듯했고 수석을 찾아 헤매는 이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30년도 훨씬 전인 외할머니 계셨을 때는 사람하나 겨우 오를 수 있는 첩첩 산중의 산길이었던 길이 지금은 큰 도로에서 바로 절마당까지 차도가 쭉 나 있어 차로 올라가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세상 참 좋아진 것이다.^^ 산사로 올라가는 차도 양옆으로는 벚나무도 심어져 있어 봄 벚꽃필 무렵의 풍경도 아름다울 것 같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돌담과 연보랏빛 구절초가 반겨주었다. 안국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멋진 돌담이 잘 쌓여져 있었는데 당근 할머니 계실 때는 없었던 돌담이라 그닥 세월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돌담 위에 백구 한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차 소리를 듣고 누가 왔나하고 내려다 보는 모양....^^ 사람의 인적 없는 첩첩산골에서 외로이 살다보니 백구는 사람이 아마도 아주 많이 그리웠나보다 우리가 안국사에 머무는 동안 내내 우리들 주위를 맴돌며 따라 다녔다. 신기하게도 짖지를 않았으며 아이들과는 금방 친해져서 핥기도 하고 장난도 쳤다.

 




함양 안국사(安國寺)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1131번지 지리산 금대봉기슭에 있는 산사로 656년 신라무열왕3년에 행우가 창건하였다고는 하나 정확하지는 않고, 1430년 (조선세종12) 행호가 금대암과 함께 중창했으나 임란때 전소되고 한국전때 불탔다가 1963년 다시 불사가 이루어져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도유형문화재로 안국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은광대화상 부도, 안국사 부도가 보존되어 있다.

 




안국사는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규모가 컷다. 그런데 외할머니께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위 사진 오른쪽의 법당 건물 한 채와 산신각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해서 할머니께서는 부처님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없으니 아버지께 요사체를 한 채 지어달라고 요청하셨다 한다. 지리산자락 첩첩산골에 집을 짓는다는 것이 그 때 당시만 해도 상당히 힘든 일이기도 하였지만 외할머니의 황당한 방랑벽(?)때문에 아버지께서는 마땅치 않으시기도 하셨단다.

 




그도 그럴것이 할머니께서는 많은 여러곳의 암자에 거처하셨는데 그럴때마다 아버지께서 찾아 다니셔야 했단다. 통도사 옥련암에 계실 때는 아홉마지기 논농사를 시간 날때마다 가서 거들어 드렸는데 추수를 코 앞에 두고 아버지께는 말 한마디 하시지 않고 훌훌 던져버리시고는 나와 버리셨고, 범어사 원효암에 원두스님이 계실 때 칠성각을 목수들과 함께 가서 새로 만들어 드렸는데 다른 스님이 오신 뒤 그 곳 또한 일언반구 말씀 한마디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셔서 한참을 찾으셨단다. 할머니께서 정성을 들이던 절을 나오신 이유는 단 하나 맘의 덕없이 놀고 먹는 스님 꼴 보기 싫어서...ㅋㅋ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그 말 그대로...^^

 




외할머니의 이곳이 내생애 마지막 거처라고 하시는 말씀에 산채를 수소문해서 구입해 그것을 뜯어 옮겨 아버지 손수 지으신 것이 왼쪽의 요사체라고 한다. 산채를 10만원 주고 구입하셨는데 그것을 옮기는 인건비가 10만원이 들었다고 하니 사람하나 뽀도시(겨우) 다닐 수 있는 산길을 따라 기와를 한장한장 이고 지고 나른정성이 대단... 원래는 3칸짜리 산채였는데 할머니의 요청에 따라 4칸으로 늘리면서 기둥을 세울 나무가 없어 제일 왼쪽 앞의 기둥은 하는 수 없이 버드나무로 깎아 만드셨다며 아버지께서는 히끝무리하게 변한 버드나무 기둥을 쓰다듬으셨다.

 




안국사 무량수전 무량수전 : 아미타여래를 모신 법당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이 무량수전은 할머니 계실 때는 없었던 건물이란다. 위 뒷쪽의 산신각의 위치는 그대로 인데 건물이 새롭고 단청이 새것인것을 보면 무량수전을 만들때 산신각도 새롭게 손을 본 듯하다.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무량수전... 건물이 원래 그렇게 있었던 것을 복원 한 것인지 아니면 전혀 없었던 것을 새로이 만든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안국사 목조아미타여래 좌상 (시도유형문화재 제444호) 이 불상은 불단 위에 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그중 주존불이다. 2004년 개금불사를 시행하여 전반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불상 바닥에 마련 된 복장공은 가로17cm, 세로9cm로 작은 크기로 현재는 한지로 발라두었다. 개금당시 복장공을 개봉하였으나 이미 도난당해 복장 내에 유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등을 세우고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 자세로 결가부좌하였다. 조성기가 망실되어 조성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안정감을 보이는 조형감이라든지 부드러움과 자비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얼굴의 표현등은 조각가의 역량이 뛰어남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아버지께서는 할머니 거처를 만드시면서 법당을 손보시고 아미타불을 할머니께서는 뒤에서 미시고 아버지께서는 업어 옮기셨다고 한다. 그 때 업어 옮기실때는 그것이 문화재인줄도 모르셨다고...^^

 




산신각에서 내려다 본 법당 새롭게 현대식으로 지어져 고운 단청이 입혀진 무량수전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해보이는 법당 인터넷을 찾아보니 법당이라 하지 않고 현존하는 요사체중 하나라고 되어 있어 씁쓸하기도 하였다. 법당을 내려다 보았을 꽃무릇은 이미 다 졌고 꽃이 졌음을 어찌 그리도 잘 눈치를 채었는지 잎이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꽃무릇은 잎이 나온다음 겨울을 나는 모양이다.

 




안국사는 유명하지도 규모가 크지도 않은 사찰이고 나처럼 이러한 연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 볼것도 없는 사찰이지만 조선시대 선인들이 남긴 지리산 유람기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찰이라고 한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대부분 능선에 위치한 여느 사찰과는 달리 계곡에 절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라하겠다. 위 사진이 안국사 해우소이다. 산신각을 내려와 할머니 머무시던 거처를 한 바퀴 돌아 화장실이 급하여 아버지께 물으니 가르쳐 주신 곳이 할머니 거처 뒤로 대나무가 으시시하게 쫙쫙 뻗은 곳 그것도 계곡 바위 바로 위라 화장실 안에 나 있는 아래 구멍를 보면 완전 아찔....오마나...그래도 어쩌랴 급한데.... 볼 일 보고 나오니 어질어질하더라....ㅎ 나는 오른쪽을 이용하였는데 벼랑끝의 왼쪽은 더 아찔하지 싶다.^^

 




안국사를 둘러 보고 나오는 길 아버지께서는 우리보고 먼저 내려가 기다리라 하시고는 성후스님을 만나러 올라가셨다. 아버지께서는 안국사로 오는 내내 성후스님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셨다. 그토록 볼품없었던 사찰을 발품팔아 산 주인들 찾아다니며 길을 내고 후원금을 모아 이렇게도 훌륭하게 만드셨다고, 소박소탈하시고 불심이 깊으신 분이라고 하셨다.

 




성후스님은 할머니 머무르셨던 거처에서 3년을 지내셨다고 하신다. 그 뒤 산사 위쪽으로 별채를 만들어 거처하셨는데 별채가 오히려 조망이 더 좋았다. 시야가 툭 터져 지리산과 멀리 기타의 산들이 시야에 다 들어오는 것이 문턱에 걸터앉아 있으면 장대한 지리산 산맥을 다 취한 듯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버지께서는 30년도 훨씬 더 지난 그 지난날 안국사에서 외할머니와 오빠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들고 와서 성후스님께 보여드렸다한다. 사진속의 꽃을 가리키며 스님께서 "이 꽃이 그때도 있었군요. 지금도 여름이면 이 꽃이 핀답니다." 하시더란다. 사진속 고2였던 오빠는 여름방학 한 달내내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와서 요사체 짓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지금은 절입구 주차장인 이곳이 예전 할머니의 채마밭이라고 한다. 채마밭은 흔적도 없고 시멘트를 깔끔하게 입혀 두었는데 나는 호미들고 앉은 허리굽은 우리 할머니가 보이는 듯했다. 우리를 내내 따라 다니던 백구 전에는 청정이와 반야 그렇게 두마리였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때는 한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숫놈인것을 보니 이놈이 아마도 청정이 인 듯....^^

 




반야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내내 꼬리를 흔들며 딸랑딸랑 따라다녔다. 낯선 사람인데도 짖지도 않고 마냥 헤벌쭉 웃으면서...^^ 성후스님 만나러 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들꽃을 찍고 있는 내 주위를 내내 뱅글뱅글 돌았다. 냄새도 킁킁 맡고... 다음에 오면 내냄새를 기억할라나....ㅎ

 




안국사 부도(위)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 부도 :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 행호조사탑, 금송당사리탑, 서상대사의 부도라 한다. 안국사 은광대화상 부도탑(아래)(시도 유형문화제 제337호) 1998년에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가운데 받침돌에 '은광대화상'이라 새겨 주인공을 밝혀 놓았다. 통일 신라의 부도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에 새겨 놓은 연꽃무늬로 보아 통일신라말 고려초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부도는 국태민안을 비는 사찰인 전국의 3안국(지리안국, 서산안국, 금산안국)중 지리산의 안국사에 있는 것으로 명당의 혈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 더욱 중요성을 띤다.

 




외할머니께서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 맘 잡수시고 안국사에서 거처하고 몇 년...절이 자리를 잡을 즈음 할머니 혼자 조용히 지내던 절에 해인사에서 보내온 스님이 한 분 오셨단다. 이 스님 역시 할머니의 놀고 먹으려는 스님 중 한 분...ㅎ 할머니는 그 꼴 보기싫다며 다시 거처를 옮기셨고 그 다음에도 한차례 더 옮기셨던 것으로 안다. 참 많이도 발전한 모습을 보면 우리 할머니 좋아하실까 싫어하실까......일단 놀고 먹으려는 스님은 아니시니 좋아하실 듯^^ 그래도 나는 자꾸 뒤돌아 봐 졌다. 너무너무 많이 변해가는 도시와 다를 것이 없는 그 공허함 더 발전하고 더 채워져 가는데도 어찌하여 더 씁쓸한 것인지..... 차가 움직이고도 그 자리 한참이나 앉아 있던 백구가 자꾸 가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