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밀양 표충사 - 유교와 불교가 한 도량안에 자리한 절집

#경린 2012. 10. 21. 20:14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 얼음골에서 천왕산 하늘 정원을 이어주는 케이블카가 생겼다고 친정부모님 며칠전 다녀오셨다길래 우리도 가볼까하고 나선 길.....그런데 입구에 도착하니 오늘은 완전 마감되었다는 안내판이 떡하니 섰더군요. 멀리서 케이블카 올라가는 것만 보고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얼음골케이블카는 현존 국내 최장거리의 왕복식 케이블카로 길이가 1.8km에 달하며, 상부역사가 해발 1,020m 고지에 있어 하늘과 맞닿는 듯하고 아마도 내려올 때는 스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말과 휴일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안되고 평일에도 4시간씩 기다렸다가 탄다고 하네요.^^

 



얼음골을 지나 표충사로 향했습니다. 가을단풍의 바람이 흐르는 산야도 추수를 끝내거나 아직 끝내지 않은 들녘도 얼음골의 특산물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 과수원도 모두모두 진풍경이었습니다. 사과나무 하나에 그렇게 많은 사과가 달려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요. 감나무처럼 많이도 달려 있었답니다.^^ 표충사 일주문 앞의 계곡 계곡위의 다리를 지나며 흐르는 맑은 물을 보니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표충사 일주문 경남의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명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옆으로 졸졸졸 맑은 계곡이 흐르는 자리에 위치한 표충사 원효대사가 산정에 올라 오색채운이 이는 것을 보고 터를 잡았다고 하더만 계곡의 경관도 먼산의 풍광도 오르는 내내 펼쳐지는 소나무숲도 수려하고 멋졌습니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오르는 길의 양옆으로 펼쳐진 소나무와 숲도 대단한 운치였는데 우리는 일주문과 계곡 사이의 차로를 이용 해 바로 올라갔습니다.

 



표충사 입구의 영사각 차를 주차하고 내리니 바로 영사각이 보였습니다. 영사각은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으로서 죽은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속세의 떼를 벗는 의미라고 합니다. 다른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표충사의 정문 수충루 영사각에서 본 천하제일루라 적혀 있는 수충루로 저 문을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표충사 경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수충루는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서원(書院)의 정문 형태의 누각인데 이는 표충사(表忠詞)를 밀양시 무안면에서 옮겨 오면서 사명, 서산, 기허대사의 위패를 같이 모신 표충서원이 표충사(表忠寺) 내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광전으로 들어가는 사천왕문 수충루 기둥에서 바라본 사천왕문 절에는 참말로 통과해야 할 문들이 많네요.^^ 수충루에서 사천왕문까지는 표충사당및 서원의 영역이고 사천왕문을 넘어서면 사찰의 영역인 듯합니다. 역시 배치가 여느 절과는 다르지요.^^

 



표충사(表忠寺)안에 표충사(表忠詞)가 있다 사천왕문을 오르기 전 재약산의 아름다운 산봉우리 아래 유물관과 표충서원(유물관맞은편), 표충사(表忠詞)가 있습니다. 표충사(表忠詞)는 임진왜란 당시 호국승병장 사명대사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유물관에는 사명대사가 걸쳤던 금란가사와 장삼 등이 원형그대로 보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천왕문 내의 돌담에서 바라본 표충사(表忠詞)와 표충서원 숭유억불 정책의 조선시대에 유교와 불교가 한 도량안에 자리하게 된 것이 표충사의 특이한 점인데 잘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은 어찌 된 사연일까요? 광해군 2년 서산대사가 입적하니 당시 조정에서는 국장으로 장례를 지내고 밀양 표충사(詞)와 묘향산 수충사(詞)에 서원편액을 내리며 유교식 제향으로 봉행토록 했습니다. 유교의 당시 사회에서 승려에 대한 파격적인 예우였지요. 그 당시에는 이 곳 표충사(寺)가 아닌 사명대사가 태어난 밀양 무안면에 표충사당(表忠詞堂)과 표충비, 이를 수호할 절 표충사(寺)를 지었습니다.

 




헌종8년(1839)에 사명대사의 8세 법손 천유가 예조에 소청을 올리면서 오늘날의 표충사(寺) 경내로 사당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당시만해도 표충사(寺)는 승려가 살지 않는 폐사였는데 절집의 이름도 영정사라고 불리었다고 하네요. 임진왜란 때의 승대장인 서산, 사명, 기허 등 3대 선사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서원이 사찰 안에 옮겨 옴으로서 절의 이름을 표충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의 연유로하여 유교와 불교가 한 도량안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사천왕문으로 오르는 계단 일주문에서 수충루 문까지도 제법(차로는 금방이었지만) 걸어 와야했는데 수충루를 지나 사천왕문까지의 마당도 대단하여 참으로 규모가 대단한 절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천왕문을 통과하는 순간...와~ 하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산속의 절집이라고 하기보다는 북적이는 사람들도 그렇고 쫘악 늘어선 돌담도, 많은 건물들도 영화의 셋트장 같기도 하고 옛날의 시장 풍경같기도 하였습니다.

 




삼층석탑(보물 제467호)과 석등(유형문화재 제14호)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늦은 시기에 세워진 듯하고 석등은 조각의 수법이나 규모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초기의 것으로 추정한답니다. 삼층석탑과 석등 주위를 합장하고 돌며 기도하시는 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영묘한 효험이 있다는 영정약수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 명약을 찾던 중 황발선인의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아와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흥덕왕이 친히 선사를 찾아와 크게 칭송하나 황발선인이 말하기를 이곳의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였다. 흥덕왕은 그 말에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부흥시키고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하고 사명 또한 영정약수의 이름 따서 영정사라 하였다.
영묘한 효험이 있다는 영정약수 한모금하니 왠지 기분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표충사의 큰법당 대광전 법당이란 진리로써 가득 채워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고, 대광전에는 삼존불이 봉안 되어 있습니다. 대광전 왼쪽은 문살이 아름다운 팔상전인데 지금은 수리보수 중이었습니다. 대광전, 팔상전, 우화루, 법종각 그리고 명부전과 관음전 대광전과 팔상전 뒤로 독성전과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독성전과 산신각이 한 지붕 아래 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기도 하였습니다.

 

대광전 처마와 단청 앞 

건물 뒤에서 본 모습


 




대광전의 단청은 절집치고는 상당히 화려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처마아래의 조각도 봉황(?)인 듯하였는데 그 또한 여느 절에서 보지 못한 화려함인 듯 했고 자세히 보니 봉황의 눈이 모두 다르지뭡니까..... 짙은 아이라인과 마스카라의 쌍커풀이 있는 큰눈도 있고 부처님 눈을 닮은 가늘고 인자한 눈이 있는가하면 쪽 찢어진 싸납은 눈도....^^

 




관음전의 준제관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현실세계에서 괴로움에 처한 중생이 그의 이름을 정성으로 외면 그 음성을 듣고, 인간의 간절한 기원과 요구에 응해 나타나는 구세대비자랍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큰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모든 악귀도 괴롭힐 수 없다. 또 중생의 마음 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을 여의게 하며, 아들이나 딸을 바라는 이에게는 뜻에 따라 자식을 얻게 한다.”라고 하였다합니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천개의팔, 천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이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일을 도와 준다고 하였는데 이곳 표충사 관음전에 모셔진 준제관음(准提觀音)은 18개의 팔을 가지고 앉아 있는 독특한 모습으로 깨끗한 모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우리외할머니께서 부처님께 절을 할 때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하셨던 의미를 이제 알 듯 합니다.^^




대광전 맞은편에 위치한 우화루와 범종각 우화루는 아주 큰 넓은 마루형식으로 되어 있고 테이블도 놓여 있어 여러 가족들이 소풍을 나온 듯 먹거리를 펼쳐놓고 먹거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화루에 앉아 내려다 본 계곡의 단풍 우화루는 반짝반짝 잘 닦여진 나무 마루로 되어 있어 안개처럼 쫘악 깔렸던 구름사이로 나온 햇살을 받아 따끈따끈하였습니다. 가장자리에 살짝 걸터 앉아 단풍을 보며 바람을 맞으니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듯 하였고 스르르 잠이 절로 오기도 하였습니다.^^

 




표충사 만일루(문화재 제142호) 조선시대인 1860년(철종 11)에 월암선사가 혜원법사의 유풍을 떨치고자 만일(萬日)의 기도 끝에 이룩한 건물이라 합니다. 만일루는 ‘H’자형으로 된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로서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평의 부지에 불교의 48원(願)을 상징하는 48칸의 선실(禪室)로 지어졌고 이 건물은 무량수각(無量壽閣) 또는 서래각(西來閣)으로 편액되어 선방(禪房)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은 대한불교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대종사가 말년(末年)을 보내다가 1963년 열반한 곳이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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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는 오랜 역사만큼 주위에 함께 한 고목들이 많았습니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고목의 그 멋있는 풍체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절마당 곳곳에 굵은 배롱나무들의 모습에서 여름의 붉은 꽃잎 떨어진 절마당의 운치도 대단할 것 같았습니다.

 




표충사 경내를 둘러보고 계곡으로 내려와 맛있는 점심을 냠냠......^^ 햇살이 보였다가 구름속으로 숨었다가를 반복하였는데 단풍이 들기 시작한 계곡의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내려 앉을때의 색은 그야말로 눈부신 반짝임이었답니다.

 




우리나라 여러사찰들이 다 그렇듯이 표충사 역시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으로 언제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여행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엄마앞에서 재롱잔치^^ 점심먹고 매점앞에서 커피 한 잔하고 있는데 바로앞에서 너무 사랑스러운 모습이 보여 찰칵~ ^^ 엄마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아이들 모습....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요.^^ 사찰 어딜가더라도 역시 볼 수 있는 소망의 돌탑들 저도 표충사를 내려오며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 돌탑 위에 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