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천년 은행나무와의 만남 영동 영국사

#경린 2014. 10. 21. 21:30

 


영동 천태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영국사의 천년 은행나무를 만나기 위해 산길을 올랐다.
주차장에서 영국사까지는 약20분 산길을 올라야 한다.
영국사 앞에도 주차장이 있는 것을 보면 차량을 이용하여 갈 수 있는
우횟길이 있는 듯한데 기왕이면 충북의 설악이라고 불리는
천태산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 명성답게 초입에서부터 만나는 나무들의 수령이 예사롭지 않다.
걷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이 아름다운 풍경들, 절집도 절집이지만
언젠가부터 그 절집으로 향하는 길이 주는 운치와 호젓함이
나는 참으로 좋아 졌다.

 


충북의 설악이라는 명성답게 화강암 바위들이 많고 특별한 이름들도 있는 듯하다.
영국사 오르는 길목에서 만난 삼신할미바위도 그 중 하나
손이 귀한 집안이 여기 와서 빌어주면 아들을 낳는 단다.
자그마한 소원돌들이 많이도 쌓여 있다. 그만큼 아들도 많이 낳았을라나...^^


소원돌 사이 사이에 세워진 작대기들은 무엇인고 하였더만
허리 아픈사람들 양밥으로 세워두는 작대기라고 지기가 일러 주었다.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위로의 힘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골짝에서 내려오는 물이 삼단으로 떨어지는 삼단 폭포
수량이 풍부할 때 쓰리삼단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멋있을것 같다.

 

 


영국사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은 이렇게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다.
운동부족인 도시사람들도 세월아 네월아 오를만 하다.

 

 


드디어 일주문이 보인다.
몇 해 전만 해도 없었던 일주문이라고 한다.
찾는이가 많아 지다보니 새롭게 만든 듯하다.
일주문 너머에는 매표소도 있었다. 유명하긴 유명한 절인 모양...^^

 


일주문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서 절로 나오는 감탄사
와!! 저게 바로 천년 그 은행나무로구나~~~ 대박~~헐~~
대장군처럼 위풍당당한 풍채로 영국사를 지키고 서 있는 은행나무
언젠가 시를 올리면서 어디의 은행나무인지도 모르고
그저 멋있고 아름다워 업어 왔던 그 은행나무가 바로 영국사의
은행나무였다니.......어쩌면 나무가 저렇게 멋있을 수가 있단 말인지...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 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1.4m, 
가슴둘레 11.54m 정도로 영국사 정문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서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한 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큰 나무로 문화적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글에서 옮겨 옴

 

 


이 은행나무는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며
가을에는 이 나무와 주변의 경관이 하나로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고
은행나무 앞 안내문에 쓰여 있었는데 은행잎이 황금빛으로 물들었을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까 싶다.

 


풍채만큼 은행알도 어찌나 많이 달고 있는지 온통 조롱조롱
은행나무울타리에는 색색종이 예쁜 단풍같은 소원지를 매달아 놓았다.
나도 소원하나 적어 매달아 놓고 왔다.^^ 

 

 

 

 


가을색이 조용히 입혀져 가는 절 앞마당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한참을 보게 되는 감따는 풍경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어느새 가을을 안고 떨어지는 잎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직 은행잎도 물들지 않았는데 성질 급한 녀석들이다.

 


영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제30대 문무왕 8년에 원각국사가 청건하였으며
제32대 효소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제23대 고종 때 감역 안종필이 왕명으로 탑.부도.금당 중건을 하고
절이름을 국청사라고 하였다.
영국사로 부르게 된 것은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에 원나라의 홍건적이
개성까지 쳐 들어와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몽진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였다. 마침내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무찌르고
개경을 수복하게 되자 왕이 기뻐하며 부처에게 감사드리고
떠나면서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국사가 산명을 지륵,
절 이름을 영국이라 명명하였다고도 전한다.
나라에 큰일 생겼을 때 왕이 피난 와 있던 절이라 은행나무가
큰 일이 생겼을 때 소리내어 운다고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사 삼층 석탑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옛 절터에 넘어져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와 복원 하였고
대웅전 건물이 향하고 있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강아지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듯 금줄이 쳐져 있다.
세상 편한 엄마와 자식의 모양이 아닌가...^^


대웅전에서 내려다 보는 앞마당의 단풍나무도
은행나무의 오랜 친구 인듯 고풍스러운 누각과 멋스럽게 어우러졌다.
영국사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름다움과 단아한 아늑함이 가득한 절집이었다.
10월말경 은행나무의 황금빛이 절정을 이룰 때 시낭송, 사진, 미술 등
시와 음악이 흐르는 힐링캠프를 해마다 열기도 한단다.

 


천 년 세월을 묵묵히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은행나무
한 백년도 못 살면서 죽네사네를 반복하는 우리네 삶
나라에 큰 일이 있을때만 소리내어 운다는 은행나무
우리네들도 뻑 하면 못 살겠다 죽겠다 하지 말고
저 은행나무 처럼 꿋꿋이 묵묵히 당당하게 살아 볼 일이다.
살다가 힘들고 눈물 날 때는 영국사 은행나무를 떠 올려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