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청도 적천사

#경린 2014. 11. 16. 22:02

 


예전에 단풍들면 가 보려고 찜 해 놓은 800년의 은행나무가 유명한
청도 적천사를 찾아 가며 만난 집입니다.
잎은 다 떨어지고 발갛게 익어가는 감을 조롱조롱 단 감나무와
넘 잘 어울리는 그림같은 집이 넘 좋아 보이기는 한데 산 속에 홀로 있는
외딴집이라 밤 되면 마이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바로 따라 왔습니다.

 


청도 특산물이 반시(접시처럼 납작하게 생긴 감)인 만큼 여기 저기 온통
조롱조롱 감 천지인 풍경이 가을의 운치를 제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잎이 다 떨어지고 감들만 어찌 그리도 많이 달렸는지요.
올해 감이 풍년이라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적천사를 찾아 가는 길은 안내표지가 잘 되어 있어 쉬이 갈 수 있었습니다.
한참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길 끝이 노랑노랑 한 것이 적천사 은행나무임을 단박 알 수 있었습니다.

 


창원시내의 은행잎들이 아직은 완전 단풍이 들지 않은 때인지라 늦지는 않았겠지하고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은행잎이 절반 이상 져 버려서 아쉬웠습니다.
적천사의 은행나무 절정도 10월말 11초가 최고라고 하네요.
올해는 어짜피 지나간 것이고 내년 10월 말에서 11월초에는 정말 바쁠 듯 합니다.^^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800살이라하니 얼마전 본 영국사의 은행나무 보다는
나이만큼 작아보였는데 그래도 엄청 큽니다. 저랑 비교하니..와우~~^^ 

높이 25.5m, 둘레 8.7m의 크기로 3m 위치까지 한 줄기이며 그 위부터는 3개의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맹아 및 유주가 유난히 발달했는데, 맹아는 새로 난 싹을 말하며, 유주(乳柱.젖기둥)는 가지 사이에 
혹 또는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가지를 말한다고 하는데 유주는 일종의 뿌리가 기형적으로
변한 것이라고도 하고, 줄기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자가치유의 방법으로 나무 진액이
흘러나와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흔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모습으로
오랜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왔으며 생물학적, 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담아와 엮은 글>

 


근데 자료를 찾다보니 경남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는 실제로 여인의 젖가슴을 빼닮았다 합니다.
그 형태 때문에 오래 전부터 아이를 낳고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産母)가
이 나무에 정성을 들이면 젖이 잘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하고 모양이 모양인 만큼
유주를 가진 은행나무들은 나름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합니다.
의령이면 창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흠..^^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보조국사가 고려 명종 5년(1175)에 적천사를 다시 지은 후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서 이처럼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적천사는 신라 문무왕 4년(664년)에 원효(元曉)가
수도하기 위하여 토굴을 지음으로써 창건되었다고 전합니다. 
이 절을 지눌국사가 중창하기 전에는 많은 도적떼가 살고 있었는데,
지눌스님이 가랑잎에 범호(虎)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도적떼를 쫓아냈다는 일화는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네요. 

 


800년 동안 은행나무가 밤이나 낮이나 마주보며 짝사랑한 
맞배지붕형 목조건물 천왕문(天王門)으로 오릅니다.
단청이 입혀지지 않은 목조건물이 멋스럽습니다.

 

무차루


천왕문과 마주 보고 있는 무차루(無遮樓)
무차루는 1993년에 건립한 루(樓)로, 무차(無遮)라는 말은 막음이 없다는 말로
부처님 세계로 들어오는 자는 누구나를 막론하고 평등하다는 말이랍니다.

 


말랑말랑 곶감이 되어가는 모습도 정겹습니다.

 


대웅전 앞의 지주와 쇠막대기는 무슨 용도인가 싶었는데
괘불(그림)을 걸어 놓는 용도라고 합니다.

적천사괘불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오른 어깨로 비켜 올려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는 보살 형태의
독존도 형식 그림으로, 다른 인물이나 배경을 전혀 표현하지 않은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그림 하단에 화기가 남아 있어 그림이 강희 34년(1695)에 조성되었고, 화원(畵員)으로는 상린(尙鱗)·
해웅(海雄)· 지영(智英)· 성종(聖宗)· 상명(尙明) 등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 괘불을 걸기 위한 괘불대 지주는 대웅전 앞에 석조로 한 쌍이 서 있는데,
강희 40년(1701)에 거사 경순(敬順) 등이 참여하여 만들었음을 알려주는 명문이 있다.
이 자료들은 17세기 말 괘불 및 괘불을 거는 지주의 모습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담아 온 글>
 
적천사 괘불은 언제 거는 것인지...불교 행사가 있을 때일까요...??

 


범종과 법고는 요근래의 것인지 단청의 색이 깨끗하고 화려했습니다.

 


적천사 은행나무는 암그루로 은행열매를 많이 달고 있는 듯했는데
나무 울타리 옆에 은행열매를 절대 가져 가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기까지는 그냥 절집 인심이 좀 그렇다 싶었는데
적발시에는 10배로 보상과 고발조치 하겠다는 문구까지.....흐미
얼마나 많은 은행열매를 도둑 맞았길래....그래도 그렇지 절집에서.......
야박한 문구에 울지기의 심기가 불편해져서리 나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ㅎㅎ

 


은행잎이 지기 전이었다면 천왕문에서 바라다 보는 모습이 얼마나 이뻤을까요.

 


가을이 깊어 가는 길을 다시 내려옵니다.
적당한 곳 아래에 주차를 해 두고 걸어 올라 왔어도 좋았겠다 싶은 길입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물들어 가는 산자락은 절정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청도는 감과 노란 은행나무가 많아 가을에 찾으면 어울림이 더
돋보이는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